취임후 처음 미국을 방문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정상외교가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30억달러의 차관 도입에 합의한데 이어 10일에는 클린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미 투자협정 체결, 대북 공조체제 유지 등에 합의함으로써 정치 경제면에서 수확이 있었다.이런 성과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두 나라간의 범죄인 인도조약 체결이다. 이 조약의 체결로 미국은 더 이상 국내 범죄인들의 도피천국이 될 수 없게 됐다. 죄짓고 미국으로 도피하는 범죄 수사가 원활해지고 범죄예방에도 큰 효력을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 범죄를 저지르고 미국으로 도피한 권력형 축재사범 등의 강제송환이 가능해져 국민의 울분을 풀어주는 효과도 기대된다. 개인휴대통신(PCS)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돈을 받은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이석채(李錫采) 전 정보통신부장관 등 역대 정권의 비리 공직자들을 포함한 3,000여명의 송환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겠다니 도피재산 환수까지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더 큰 의미는 우리나라의 인권상황이 개선됐음을 인정받은 사실에 있다. 이 조약은 오래전부터 추진돼 왔으나 미국은 한국의 형사사법 절차와 인권상황이 신뢰할 수준이 아니라는 이유로 소극적으로 대해오다 새 정부 출범이후 협상이 급진전, 3개월만에 조약 체결이 이루어졌다. 전통적으로 사법체계가 다른 나라와의 범죄인 인도조약 체결을 꺼려온 미국이 오래 끌던 협상을 일사천리로 타결시킨 것은 이례적이라고 법무부는 설명한다. 이제 한국도 인권을 존중하는 나라가 됐음을 뜻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미국 도착직후 김대통령이 국제인권연맹이 주는 「올해의 인권상」을 받은 사실에 유념한다. 오랜 세월 정치적으로 탄압받던 인물이 대통령이 된 사실만으로도 한국의 인권상황이 크게 개선된 사실이 입증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된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국민이 어떤 이유로도 권리를 침해당하지 않는 법 질서를 확립해 국제사회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김대통령은 인권상 수락연설을 통해 『국민의 정부는 국민 개개인의 인권문제를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며,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인권법 제정과 국가인권위원회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권법을 제정하고 국가인권위원회를 설립한다고 인권국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법과 제도도 중요하지만 인권을 존중하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더욱 절실하다. 지도층은 물론이고 수사기관 등 법을 다루는 국가기관 종사자들과 국민 모두가 인간의 기본권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일치된 인식 아래 개개 사건의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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