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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방식은 싫다(장명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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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방식은 싫다(장명수 칼럼)

입력
1998.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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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을 읽다가, 텔레비전 뉴스를 보다가, 참을수 없는 역겨움을 느낄때가 있다. 오늘 아침도 그랬다. 한나라당 김홍신의원을 소환한 검찰, 소환에 응하는 김홍신의원의 태도가 한꺼번에 그런 감정을 몰고 왔다.지난 5월 26일 지방선거 연설회에서 나온 김홍신의원의 「미싱발언」은 사실 문제가 있다. 정치인의 독설이란 국민의 체증을 뚫어주는 묘미가 있어야 하는데, 그의 발언은 체증을 새로 일으킬만큼 소름이 돋았다. 『사람이 죽으면 염라대왕이 잘못한것 만큼 바늘로 뜨는데, 김대중대통령과 임창렬후보는 거짓말을 하도 많이해 공업용 미싱으로 박아야 한다』는 욕설을 어찌 정치연설이라고 하겠는가.

여당은 그를 검찰에 고발했고, 검찰은 8일 그를 소환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관권·금품 시비가 잠잠한 대신 비방과 흑색선전이 난무했으므로 법이 그 풍토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여론에도 물론 일리가 있다.

그러나 김의원이 검찰에 소환되는 모습은 악명높던 왕년의 국가원수모독죄를 떠올리게 했다. 군사독재시절 대개 술취한 사람들이 술집이나 택시안에서 대통령을 욕하다가 경찰에 잡혀가 모진 조사를 받고 구속되거나 직장에서 쫓겨나곤 했다. 김의원의 발언이 지나쳤던 것은 사실이지만 법으로 단죄할 정도는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의원의 발언은 유권자들이 자기 나름으로 심판하면 된다.

김의원의 발언내용, 여당의 고발, 검찰의 즉각적인 조사등은 모두 과거의 방식을 닮았다. 검찰소환에 응하는 김의원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검찰에 출두한후 『오늘은 약속을 지키러 나왔으니 조사는 다음에 받겠다』고 버텼고, 검찰청사 현관에서 신부님과 부둥켜안고 기도까지 올렸다. 유신치하에서 목숨을 걸고 민주화투쟁을 하다가 잡혀 온 사람처럼 비장했다.

김의원사건에서만 과거의 방식이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한나라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사실상 패배했고, 여론조사마다 응답자의 대다수가 정계개편에 찬성하는등 국민의 지지를 잃고 있다. 이렇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한나라당이 정권교체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과거의 방식에 안주했기 때문이다. 지난 정권의 여당으로서 오늘의 경제위기를 막지못한 최소한의 책임감이나 선거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지못했다는 겸손함은 찾아볼수 없고, 오직 과반수 의석을 무기로 싸웠으니 국민이 등돌릴수 밖에 없었다.

DJP연합은 이미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았는데, 김종필총리안을 부결시키겠다는 것은 오랜 집권경험을 가진 정당으로서 도의에 어긋나는 처사였다.

한나라당은 국회에서 비밀투표 형식을 빌린 사실상의 공개투표를 밀고가면서 적법하다고 우겼으나, 그것은 적법이냐 불법이냐 이전에 법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도대체 이 지구상에 공개투표를 하는 나라는 북한정도라는 사실을 그들은 잊고 있었고,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악법이라도 저지하는 것처럼 전의에 불타고 있었다. 『한나라당이 저런 야당이 될줄은 몰랐다』는 국민의 환멸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북풍」사건에서도 한나라당은 과거 야당이 하던 대응을 답습했다. 그 사건의 본질은 안기부가 대선에서 야당후보를 낙선시키기위해 북과 관련된 사건들을 조작·과장·악용하고 북과 내통까지 했다는 것인데, 한나라당은 이를 야당탄압공작으로 몰고 갔다. 과거 안기부의 용공조작으로 말못할 핍박을 받았던 운동권 출신 한나라당 의원들이 김대중대통령에 대한 용공조작에 공분을 느끼지 않고 정부여당을 공격하는 모습은 특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과거의 방식에 머물러 있는것은 김대중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자기의 존재를 알리려는 욕구다. 지난 삼십여년동안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며 민주화투쟁을 해온 그에게 자기존재를 알리는 것은 생존을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대통령이다. 굳이 자기 존재를 과시하지 않아도 그는 재임기간중의 모든 공과를 책임지게 된다. 국제사회의 신인도 높이기나 해외투자 유치등에서 그는 가끔 자기자랑을 한다는 인상을 준다.

시대는 변했는데 정치는 과거의 방식에 머물러 있다. 먹고 살기가 어려워서 국민이 정치를 외면한다고 하지만, 구태의연한 정치에 국민이 신물을 내고 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여당은 과거의 여당처럼, 야당은 과거의 야당처럼 군다면 무슨 발전이 있겠는가. 과거의 방식을 더이상 못참겠다는 국민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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