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빈 “엔화방어 협의배제”가 폭락 도화선/145엔臺 분수령… 수개월내 150엔 예측도달러당 140엔의 벽이 허물어졌다. 8일 도쿄(東京)외환시장에서 엔화는 달러당 140.73엔까지 거래됐다. 91년 6월 8일 이래 7년만이다.
95년 4월 달러당 79.75엔까지 치솟았던 것과 비교하면 75%나 평가절하된 초엔저이다. 이날 엔화의 급락은 로버트 루빈 미재무장관이 선진7개국(G7) 재무장관 대리회담에서 엔저 문제를 협의하지 않는다고 밝혀 엔화 방어를 위한 협조개입 가능성을 배제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따지고 보면 지난주 달러당 140엔선이 붕괴되지 않은 것도 G7회담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날 이 기대가 무너진 것이다.
시장관계자들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것은 화폐 가치의 직접적인 지표인 금리. 일본의 장기금리 지표인 182회 국채 금리는 이달들어 연 1.115%까지 떨어졌다. 미국의 10년채 금리가 5.5%인 데 비하면 양국의 금리차는 연 4%포인트이상 벌어져 있는 셈이다.
장기금리의 하락은 침체한 일본의 경기를 자극하기 위해 금리 인하로 설비투자를 촉진해야 한다는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일본의 이같은 초저금리 현상은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경기진정과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금리 인상을 준비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결국 금리차가 더욱 벌어질 것이란 예측이 「엔팔자」를 자극하고 있다.
작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아시아 경제위기가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엔화 약세의 한 요인. 일본 경제와 아시아 경제는 이미 악순환의 고리에 물려 돌아가고 있다. 일본의 경기 침체와 아시아 경제위기가 엔저를 부르고, 엔저가 다시 아시아 각국의 수출경쟁력을 해쳐 일본의 경기를 위축시킨다. 또 일본의 경기 위축은 아시아 경제의 회복에 찬물을 끼얹는 악순환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인도·파키스탄의 핵실험에 따른 아시아 지역의 긴장도 엔화 대신 달러나 마르크화를 구입하려는 움직임을 자극하고 있다. 엔화는 달러화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마르크화에 대해서도 연일 떨어지고 있다.
한편으로 그동안 3월말 결산기에 일시적인 엔고를 가져온 주요인인 수출기업의 「달러 팔자」가 크게 둔화한 것도 한 요인이다. 일본의 수출기업이 올해 채산성 기준으로 삼고 있는 「사내 환율」은 대부분 달러당 125엔대. 이미 엄청난 환차익을 올렸지만 추가적인 환차익을 겨냥해 「달러 팔자」 선물 계약을 미루고 있다.
더이상의 엔화 폭락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둑」은 미일 통화당국의 협조개입이다. 달러당 145엔대가 「인플레 억제냐, 무역적자 축소냐」를 둘러싼 미국의 정책 변경점인 것으로 알려져 당분간 달러당 140∼145엔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질 전망이다. 그러나 이르면 수개월, 늦어도 올해안에 150엔대까지 가는 폭락도 점쳐지고 있다.<도쿄=황영식 특파원>도쿄=황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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