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를 통한 영상·음향으로 가상을 실제 현실처럼 경험한다는 의미의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은 가짜 현실이 아니라, 이제 진짜보다 훨씬 생생한 현실이 됐다. 가상현실을 만들어내는 사이버산업이야말로 새로운 밀레니엄시대의 연금술(鍊金術)이다. 얼마 전 진짜 인간이 아닌 사이버가수 「아담」이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명예학생이 됐다. 언젠가는 아담이 진짜 학생들과 함께 강의듣고 연구하고, 나아가 자신의 생과 사를 직접 기획하고 결정해나갈지도 모른다. 사이버여가수 「류시아」와 염문도 뿌리고, 결혼에 골인할지도 모르는 일이다.가상현실상의 사이버섹스를 보여줘 충격을 주었던 영화 「론머맨」. 이제는 낡아버린 이 기법이 한층 발전돼 표현됐던 「데몰리션 맨」에서는 남녀주인공 실베스터 스탤론과 샌드라 불록이 전자오락하듯 헬멧을 쓰고 사이버섹스를 즐겼다. 성마저 사랑과 피가 통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적으로 할 수 있게 된 현실. 과학기술을 통해 오감을 통한 욕망을 무한대로 확장시키려 하는 인간은 그 욕망 때문에 스스로를 소외시켜 버릴지도 모른다.
이렇게 미국의 할리우드영화와 컴퓨터산업에서 출발한 가상현실은 이제 인간의 욕망은 물론 가치관·세계관마저 변화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골치아픈 인간과 인간의 관계보다 인간과 사이버인간의 소통이 훨씬 더 쉽고 재미있다. 마우스를 한 번 「클릭」하는 것으로 전혀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 같다.
그러나 가상현실로 구축된 세계가 한 순간에 몰락한다면? 그것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현실이다. 밀레니엄 버그라는 기계적 오류가 이제껏 구축된 컴퓨터문명 전체를 위협하고 있다. 지난 달 19일 미국의 통신위성 갤럭시4호가 고장나면서 미국 전역의 무선통신서비스가 사실상 거의 마비됐던 사건은 우리가 기대고 있는 첨단기술이 얼마나 취약한 것이며, 인간에 얼마나 큰 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보기에 불과하다. 가상현실을 「인간을 위한 현실」로 만드는 것은 새 밀레니엄 시대의 커다란 과제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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