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규제 대대적 혁파등 국가개조 박차정보·금융 산업을 앞세워 아시아 공략에 나선 미국의 거대한 힘앞에서 일본은 요즘 「제2의 개국」 논의가 한창이다.
미국의 국가이익을 위한 무기라는 점에서 한동안 들끓었던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한 거부감은 거의 잦아 들었다. 1854년 미국에 의한 강제 개항 이래 한세기 반만의 새로운 「양이(攘異)」「개화」 논쟁은 또 다시 「개화」로 기울고 있다. 과거에도 그랬듯 스스로의 변화로 미국과 유럽을 하루 빨리 따라 잡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무성하다.
일본 경제체제가 1940년에 완성된 전시경제체제에서 한 걸음도 빠져 나오지 못했다고 비판해 온 도쿄(東京)대 노구치 유키오 교수는 「국가 경쟁 시대」인 21세기를 앞두고 근본적인 정책의 변화를 촉구했다. 국적 기업간의 국제적 경쟁 격화라는 뜻의 국가간 경쟁이 아니다. 기업과 국민이 국가를 선택하는 시대에 국가는 기업과 국민을 잡기 위한 경쟁에 돌입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업과 국민의 부담인 세금을 최대한 줄이면서 기업과 국민 활동의 편의를 위해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국가 전략의 핵심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내외적인 경쟁을 제약, 결과적으로 경쟁력을 떨어 뜨리는 각종 행정규제가 1차적인 혁파의 대상이다.
더디긴 하지만 일본 정부는 꾸준히 규제 완화를 시행해 왔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중인 중앙관청등에 관한 개혁기본법에 따라 2001년 중앙관청이 개편되면 그에 발맞춰 각종 행정규제가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된다. 2001년 말에 끝나는 일본판 빅뱅(금융 재편)이 한 예이다. 법인세를 미국과 유럽수준으로 낮추는 세제개혁도 활발히 검토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금융부문을 비롯, 일부 뒤처진 분야를 제외하고 제조업 분야에서는 기업들이 이미 정부의 새로운 토양 만들기에 앞서 스스로 자생력을 키워와 어떤 외풍도 이겨낼 자세를 갖추었다. 자생력의 핵심은 바로 기술이다. 이른바 「모노즈쿠리(물건 만들기)」에서는 천하제일이라는 자존심을 잃지 않고 있다. 연구·개발비도 크게 늘어나 95년에는 14조2,000억엔대에 이르렀다. 물론 한때 경쟁의 기준을 미국이 결정하는 시장에서 「모노즈쿠리 경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일본이 필요로 하는 것은 소니나 도시바(東芝)가 아니라 마이크로 소프트라는 주장도 잇따랐다. 그러나 이런 논의는 우선 자신의 장점을 살려 나가자는 「차분한 변화론」으로 모아지고 있다.
도쿠시마(德島)현의 소기업인 시코쿠(四國)화공기는 우유종이팩 등 액체충진기계를 생산하는 전문업체. 1ℓ종이팩 규격은 미국의 퓨어팩이 개발해 기계와 재료를 동시에 생산해 왔다. 그러나 퓨어팩이 새로운 규격개발에 애쓰는 동안 시코쿠화공기는 기계개발에 힘써 현재 퓨어팩에 100% 기계를 공급하고 있다.
저공해차인 「하이브리드카」의 개발도 미국 자동차 업계의 「빅 스리(3)」가 먼저 시작했지만 핵심 기술인 축전지 개발에서 일본이 이겼고 그 결과 상품화도 앞섰다.
결국 일본의 「제2 개국」은 국제 분업 체제아래서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언젠가는 미국의 「규격과 기준 만들기」를 따라 잡는다는 기대와 자신감과 동시에 담고 있다.<도쿄=황영식 특파원>도쿄=황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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