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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산과 나의 그림/최연석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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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산과 나의 그림/최연석 화백

입력
1998.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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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시간 다돼서 원고내용 전화로 듣고 쫓기듯 그려 애태우기도”/처음엔 김기창 화백이 맡아삽화는 원래 운보 김기창화백이 맡았었다. 소설과 그림이 기막히게 맞아 떨어져 훌륭한 조화를 이루었다. 아마 한국일보가 찾아낸 최고최대의 걸작으로 평가됐을 것이다. 소설이 시작된 다음 해, 운보선생의 부인 박래현(朴崍賢)화백의 사망으로 운보선생은 삽화를 그만두게 됐고 후속화가로 내가 결정됐다.

부담이 컸다. 운보선생의 뒤를 잇는다는 것과, 역사소설의 삽화를 공부한 적이 별로 없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한 장을 그리느라 밤잠을 설치고 동이 틀 무렵까지 매달리는 날이 많았다. 삽화가 소설의 품위와 흥미를 배가시킬 수도 있고 유치한 작품으로 전락(?)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이 늘 두려웠다. 몇 번이나 붓을 던지고 싶었던 게 사실이었다. 문화부장이었던 이영희선생의 격려는 큰 힘이 됐다. 『최선생님, 그림이 힘이 있고 좋습니다』. 지금도 고맙게 생각한다.

10년 넘게 연재되는 동안 화가 3명이 교체됐지만 내가 70% 이상을 그렸던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힘들었던 점은 마감시간쯤 돼서 들어온 원고내용을 전화로 불러주면 그것을 듣고 찍어내듯 그림을 그려 들고 달려가거나, 아예 신문사에서 기다리다가 그려주었던 일들이다. 시간이 충분했으면 보다 나은 그림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 무렵부터 나는 신문에 쓴 삽화를 회수하기 시작했고, 특정일자에 게재된 삽화를 꼭 구하고 싶다는 연락을 자주 받았다. 소설「장길산」은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붓으로 그리는 그림의 맛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고 할까. 깊이있는 그림의 방향을 잡는 계기가 되었음은 뜻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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