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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범죄 불감증/안경호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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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범죄 불감증/안경호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8.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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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천지에 조직적 대리투표라니』 6·4지방선거에서 기권자들의 투표용지를 빼돌려 대리투표를 한 전남 완도군 공무원과 선거사무원, 후보참관인 등 넙도 주민 16명을 두고 하는 말이다. 특히 대리투표에 선거관리를 돕는 공무원도 4명이나 가담, 공직자 자질의 일단을 보는 것같아 서글프다.경찰조사 과정에서 나타난 이들의 불법선거 행태와 변명은 「선거범죄 불감증」 그 자체다. 마을유지로 대리기표를 주도한 박모(60)씨는 『투표율을 높여 지역발전을 꾀하려 했다』고 스스럼없이 동기를 밝혔다. 30명의 기권자 투표용지를 빼돌려 후보측 참관인들에게 똑같이 나눠주었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죄의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공무원인 넙도출장소장(54·지방행정6급)의 진술은 더욱 아연케 한다. 『불법인줄 알면서도 완도군수와 친분이 두터운 박씨의 부탁을 거절할 경우 인사상 불이익을 당할 것이 두려워 투표용지를 내줬다』고 진술했다. 선거사무원으로 위촉된 주민과 투표 참관인들도 이의없이 가담했다. 이들의 「범행합의」는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이 단독후보여서 용이했다. 말썽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3명의 군의원 후보들에게는 각 10표씩을 기표해 대리투표했다.

지역발전이 몰아주는 표수로 달라진다거나, 서로 짜면 범죄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이 사건은 제2기를 맞은 지방자치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정치권에서 불법과 타락이 판치는데 민초들의 사소한 불법쯤이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는 도덕성의 해이현상과 「단체장에게 한번 찍히면 4년동안 죽어 지내야 한다」는 공무원들의 자조가 만연하는 한 진정한 지방자치제가 이땅에 정착하기는 아직 요원한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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