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호우 가능성 매우 높아/엘니뇨 대책반은 있지만 지휘체계·인프라등도 부실/언제까지 하늘만 원망하나…기상청 박정규예보관은 『올 여름 어느때보다 강한 집중호우가 내릴지도 모른다』고 우려한다. 엘니뇨의 영향이 보통 걱정이 아니다. 이상 고온이 장기화하면서 수증기를 담는 대기중의 「그릇」이 엄청나게 커져 있다. 때문에 사막기후처럼 지역에 따라 집중 폭우가 쏟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기상이변에 대한 경고인 것이다.
이에 대한 우리의 수방대책은 어떤가. 수방대책의 사령탑역할을 맡고 있는 중앙재해대책본부는 올 초부터 엘니뇨대책반을 구성, 가동중이다. 전국 재해위험지구에 대한 정비계획을 세우고 홍수통제능력을 늘리기 위한 댐을 건설하는등 정부차원의 종합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이들의 일이다. 그러나 이들의 작업이 실효성있는 대책으로 가시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스스로의 고백이다. 관련 전문가들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장마때만 반짝하는 전시행정 수준의 미봉책에 가려 수방시스템에 큰 구멍이 뚫려있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도 치수행정에 사람부터 없다. 충남지역 방재업무를 맡고 있는 공무원 이모씨의 증언. 『수십만명의 인명과 재산을 책임져야할 시군의 방재관련부서에 직원이 고작 1∼2명 밖에 안됩니다. 공문처리도 벅찬데 현장점검은 애초부터 불가능합니다』 이씨는 방재 데이터처리를 맡을 사람조차 없어 컴퓨터를 다룰줄 아는 사람을 찾다가 청원경찰을 임시로 쓰는 실정이라고 털어놓았다.
방재 담당자들의 전문성은 또 어떨까.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김승 수자원연구실장은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방재업무 담당자중 상당수가 사무직이거나 순환보직에 따라 부서를 옮겨다니는 비전문가들』이라고 말했다. 「공학」에 의해 주도면밀하게 이루어져야할 홍수관리가 「상식」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수방 예산은 언제나 뒷전이다. 행정자치부 정홍수 방재국장은 『도로와 항만건설등 사회간접자본에 투자되는 예산과 비교해 5%에도 못 미치는 예산으로 기대할 것은 없다』고 말했다. 선거때 표와 직결되는 도로예산을 달라는 사람은 있어도 둑쌓는데 돈 달라는 사람은 없는 것이 우리 풍토다.
수방시스템이 원시성을 면치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수해의 주범으로 꼽히는 하천의 개수율은 63%. 1925년 을축년 대홍수를 계기로 착수한지 70여년의 세월이 훨씬 지난 현재 진척상황이 이렇다.
수방인프라의 가장 기초적인 토대인 기상분야도 뒤떨어져 있다. 변화무쌍한 기상의 흐름을 정확하게 짚어내기 위해서는 슈퍼컴퓨터 활용은 기본. 하지만 우리 기상청은 외국에서는 일개 대학연구소도 보유하고 있다는 그 흔한 슈퍼컴퓨터 하나도 자체적으로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방재행정체계도 뒤죽박죽이다. 정부 방재행정의 지휘권은 중앙재해대책본부장을 맡고 있는 행정자치부장관 산하의 방재담당부서에게 있지만 수방의 핵심인 홍수통제와 하천관리기능은 건설교통부 산하 홍수통제소와 지방국토관리청이 맡고 있다. 댐관리만해도 다목적댐은 수자원공사가, 발전댐은 한전이 담당하고 있어 신속하고 원활한 홍수통제기능 수행에 걸림돌이 될 소지가 있다. 또 농업용수는 농림부, 생활하수는 환경부가 맡는등 업무의 특성에 따라 10여개가 남는 관련부처들이 얽히고 설킨 이해관계에 매달려 있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의 이기주의가 끼어들고 있다. 복개공사를 통해 하천 고수부지를 놀이시설이나 주차장으로 만들어 수익을 늘리려는 지방자치단체들의 무분별한 하천개발에 홍수발생 가능성이 고려되는 흔적은 별로 없다.
수방대책의 틀부터 바꿔야한다는 목소리는 올해들어 유독 크게 들린다. 윤용남 고려대 방재과학기술연구센터 소장은 『언제나 우리 수방대책은 예방보다는 복구에 치우쳐 있어 악순환이 초래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기상재해를 막느라 어떻게 많은 돈을 투자하겠습니까. 차라리 한번 당하더라도 복구하는데 돈을 쓰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지요』 재해대책업무를 맡고 있는 서울시 관계자의 「수방경제론」이다. 인재(人災)의 시작은 항상 안이한 인식이었다. 게다가 여름 재해대책 준비에 중요한 5월 한달은 전국에서 지방선거바람에 허송되고 말았다.<김병주 기자>김병주>
◎주요 물난리 일지<95년 이전 피해액은 환산금액>
▲25년 7월 을축년 대홍수, 사망 517명, 재산피해 1,656억원.
▲59년 9월 태풍 사라 남부지방 강타, 사망 849명, 재산피해 2,044억원.
▲80년 7월 경기 강원 등 중부 집중호우, 사망 160명, 재산피해 2,022억원.
▲87년 7월 태풍 셀마 남해안 강타, 사망 345명, 선박파손 2,800여척, 재산피해 4,962억원.
▲90년 9월 한강 대홍수, 일산둑 붕괴·침수, 사망 179명. 재산피해 6,077억원.
▲91년 7월 경기·강원 호우, 70명 사망, 재산피해 1,263억원.
▲91년 8월 태풍 글래디스 영남 강타, 사망 103명, 재산피해 2,629억원.
▲95년 8월 태풍 재니스 전국 집중호우, 사망 65명, 농경지 5만여㏊침수, 재산피해 4,562억원.
▲96년 7월 경기 북부 연천·철원 집중호우, 사망 89명, 재산피해 4,275억원.
▲98년 5월 서울 집중호우, 지하철 7호선 11개역 침수, 지하철 9일간 중단. 재산피해 1,000억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