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층의 저항 뿌리치고 공평한 고통분담 원칙으로 국민과 함께 다시 시작해야”6·4지방선거의 투표율이 유례없이 낮았다. 투표장에 간 유권자들의 발길도 더없이 무거웠다. 정치에 대한 자포자기적 냉소주의가 심각한 상황에 달한 것이다. 실제로 이번 선거에서 국민들은 경제를 망치고 사회를 무너뜨린 사람들이 대거 등장하여 또다시 벌인 정치난투극을 보며 애써 눈을 피해야 했다. 이번 선거는 개혁을 퇴색시키고 국민에게 암울한 절망감을 안겨줌으로써 여야가 모두 패배한 선거가 되고 말았다.
현재 100개 이상의 기업들이 매일 비명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진다. 대책없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실업자는 벌써 200만명에 육박한다. 경제와 사회기반이 붕괴하고 있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수출산업기반이 무너져 1,500억달러가 넘는 외채를 갚을 능력이 사라지고 있다. 억지로 미루어놓은 단기외채의 상환압박이 밀어닥칠 경우 경제가 부도의 파탄에 이를 수 있다.
새 정부는 경제를 살리는 개혁을 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설정했다. 그러나 출범도 전에 정부는 경제위기를 빌미로 금융실명제를 유보하고 관치금융강화를 위한 금융감독위원회의 설립을 서둘렀다. 이후 재벌개혁 금융개혁등 많은 개혁을 제시했으나 실질적인 진전은 거의 없다. 새 정부의 개혁정책에서 큰 문제는 위기의 원인제공자들에게 고통분담을 적용하지 않는 것이다. 고통분담이 형평성을 잃을 경우 개혁은 즉시 절름발이가 되고 경제는 혼란이 가중하여 스스로 무너지는 자괴현상이 나타난다.
제1기 노사정 타협에서 정부 재벌 노동 각 부분이 공평하게 고통을 분담하고 개혁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후 결과적으로 나타난 개혁은 근로자들의 정리해고를 법제화한 것 이상 다른 것이 없다. 경제위기를 불러온 책임자들은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를 주도한 정치인, 관료 그리고 재벌들인데 이들은 책임은 커녕 반성의 기미조차 없다. 실제로 국제통화기금(IMF)위기가 닥친 이후 대부분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빌미로 근로자들을 감축하는 것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있다. 여기에 정치인들은 세력확장의 이전투구에만 열중하고 있다. 또 관리들은 부처이기주의와 관료주의, 기득권 유지에 기세를 올리고 있다.
새정부 개혁정책의 또다른 문제는 논리의 모순이다. 경제의 구조조정에서 정부는 시장논리에 따른다고 하면서 무작위적으로 기업을 살리고 죽이는 관치논리를 적용하고 있다. 정부가 시한을 정해놓고 기업의 생사를 결정한다고 하니까 살생부 소문이 난무하면서 산업현장이 혼란상태로 치닫고 있다. 구조조정을 위한 정책수단이 무자비한 살생무기로 변한 것이다. 경제개혁은 본질상 시한을 정해놓고 무조건 정리하겠다는 충격요법을 쓰면 안된다. 이것은 마치 환자의 수술을 시간을 정해놓고 아무데나 칼을 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개혁의 변질은 정부조직개편과 인사의 잘못에서 빚어지기 시작했다. 경제구조개혁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 정부조직상 경제부처를 단순체계화해야 하며 각료의 임명도 개혁성향을 갖는 일관성있는 팀을 형성해야 한다. 그러나 경제부처는 중구난방식으로 확대개편하고 인사는 구시대의 정치인들과 관료들의 나눠먹기로 끝났다.
우리 경제는 머물면 침몰할 수 밖에 없는 난파선이다. 현정부는 근본적인 구조개혁을 통해 외국자본을 유치하고 경제를 살려내야 하는 과제를 부여받았다. 새 정부는 정부기능을 축소하고 개혁인사를 등용하는 정치와 정부개혁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다음 공평한 고통분담의 원칙을 명확히 설정하고 노사정이 함께 참여하는 산업구조 개혁의 청사진을 원점에서 다시 제시해야 한다. 여기서 정부는 지방선거를 끝으로 정치논리에서 완전히 탈피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 힘으로 기득권층의 저항을 뿌리치는 결연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