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증대” 외치며 정부·은행은 뒷짐/수주 해놓고서도 신용장 개설못해 굴러들어 온 외화 스스로 내치는 꼴국난극복의 요체는 외화를 벌어들이는 일이다. 외화획득은 다다익선(多多益善)이다. 수출을 획기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투자유치도 중요한 과제지만 이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액수를 늘리는데도 한계가 있을 뿐만아니라 정책적 효과가 수출만 못하다. 그런데 수출정책이 겉돌고 있다. 새정부 출범후 정부당국자들은 수출증대만이 살 길이라고 입이 닳도록 외치고 있지만 실효성있는 정책을 아직 내놓지 못하고 있다.
획기적인 수출확대를 위해서는 국제통화기금(IMF)체제이후 완전 붕괴되어 버린 무역금융시스템의 복원이 필수적이다. 특히 30대그룹계열사에 대한 무역금융지원도 재개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와 은행들은 무역금융에 대해 뒷짐을 지고 있다. 수많은 수출업체들이 바이어로부터 수주를 해놓고서도 수출신용장(LC)을 개설하지 못해 부도위기에 몰려있는데…. 굴러들어 온 외화를 우리의 노력부족으로 놓치고 있는 상황이다. 5월중 수출증가율(전년동월대비)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주원인도 바로 여기에 있다.
대구 성서공단에 있는 중견직물업체 G물산은 최근 중동바이어로부터 폴리에스터직물 300만달러어치의 주문을 따냈지만 부도위기에 몰려있다. 거래은행이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 비율8%를 맞춰야 한다며 LC개설을 거부, 원자재를 조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천 남동공단에 입주한 TV부품전문생산업체 S전자의 K사장은 최근 D종합상사로부터 1,500만달러어치에 달하는 수출용 제품생산을 주문받고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다. 주거래은행에 원자재수입을 위한 수출금융을 신청했지만 IMF체제이전의 2배인 13∼14%(리보·런던은행간금리+7%)의 비싼 이자율을 적용하고, 담보까지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K사장은 수출마진이 5%도 안되는 상황에서 비싼 수출금융이자를 내면 남는 게 없고, 공장건물이나 설비는 모두 담보로 잡혀 추가로 제공할 담보물도 없어 수출을 포기해야 할 상황이라며 울상이다.
IMF체제의 유일한 돌파구인 수출드라이브가 금융기관의 보신주의와 무역금융시스템의 붕괴로 급제동이 걸는 형국이다. IMF체제후 중단됐던 은행의 신용장네고는 최근 일부 재개됐지만 담보력이 약한 중소기업에겐 그림의 떡이다. LC개설이 가능한 기업은 사실상 20∼50개의 중견그룹 계열사로 제한되어 있다(30대그룹계열사는 무역금융혜택 제외).
무역금융 마비의 주된 요인은 금융기관의 LC개설 기피에 있다. 은행권의 수출환어음 월평균 매입실적이 IMF전의 230억달러에서 올들어 170억달러로 60억달러나 감소한데서 잘 나타난다. 정부는 은행들의 수출금융촉진을 독려하고 있지만 일선창구에선 마이동풍(馬耳東風)이다. 정부가 중소기업의 수출원자재용 자금지원을 위해 세계은행(IBRD)의 자금 10억달러를 배정했지만 은행들의 보신주의로 현재까지 1억6,000만달러만 소진됐을 뿐이다.
좌승희(左承喜) 한국경제연구원장은 『무역금융시스템의 복원을 위해 한은의 적극적인 통화정책이 시급하다』며 『특히 중소기업의 무역어음 재할인한도를 늘리고 무역금융의 융자단가와 비율도 상향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이의춘 기자>이의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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