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우월주의의 희생양인가, 아니면 소수민족의 한계인가. 美이민사상 연방하원의원이 된 최초의 한국인 김창준(金昌準·미국명 제이 킴)의원이 4선 문턱에서 좌절하고 말았다. 김의원은 지난 2일(현지시간)자신의 선거구인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지구에서 열린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18%득표로 3위에 머물러 파란만장했던 그의 의정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이로써 한국이민 1세대로서 화려하게 미 중앙정계에 데뷔했던 김씨의 「아메리칸 드림」은 3선에서 종막을 고하게 됐다.■첫 연방하원의원이 된 직후인 지난 93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등이 정치자금과 관련한 폭로기사를 실었을때만 해도 그의 재선가도는 오히려 탄탄했다. 미국사회를 지배하는 이른바 WASP(백인 앵글로색슨 프로테스탄트)라는 지배그룹으로부터 탄압을 받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이듬해인 94년 그는 재선에 성공했고 96년 3선고지도 무리없이 도달할 수 있었다.
■그가 미 언론으로부터 공격받은 사항은 선거자금 문제다. 자신이 소유한 회사로부터 근무도 안하면서 선거기간동안 봉급명목으로 30만달러를 지급받아 선거자금으로 유용했다는 혐의다. 한국적 상식으로는 별로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이지만 미국인의 잣대로는 분명한 탈법행위다. 우리교민을 비롯, 소수민족 유권자들이 하나가 되어 김의원의 변호에 발벗고 나섰지만 미국 법원은 끝내 그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지난 3월 미 연방법원은 김의원에게 유죄선고를 내렸고, 예비선거운동기간 금싸라기같은 2개월간을 자택으로 주거를 제한했다. 재선운동은 사실상 손발이 묶일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부인과의 불화까지 겹쳐 결국 그는 몰락하고 말았다. 한국적인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한 것이 부담이었을까. 그의 좌절은 다른 문화속에 뿌리내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새삼 일깨워준다.<노진환 논설위원>노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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