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뚝 우뚝 뾰족 기괴하고나 인선(人仙·사람과 신선) 신불(神佛·신령과 부처)이 모두 놀랄만 금강산 시(詩) 쓰려고 시 쓰기 아꼈건만 당도하니 감히 쓰지 못하겠네> 시인 난고 김병연(蘭皐 金炳淵·1807∼1863년)은 막상 금강산을 보니 『감히 시를 쓰지 못하겠다』고 고백했다. 시인으로서는 금강산에 최고의 찬사를 바친 것이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홍경래의 난에 잘못 연루돼 대역죄인으로 처형당했던 김병연. 그는 「김삿갓」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19세기 중반의 저항시인이었다.그처럼 천하의 절경이라는 금강산이 지금은 휴전선 저쪽에 있는 금단의 땅이다. 그러나 휴전선을 막는 금단의 벽에 서서히 틈새가 벌어질 모양이다. 우뚝>
오는 8월에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의 예술인 30명과 기자단 5명이 판문점을 통해 북한방문에 나설 예정이라고 했다. 또 현대그룹의 정주영명예회장이 보낼 소 500마리도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갈 예정이다.
그동안 판문점에서의 남북대화를 막무가내로 거부해온 북측이 생각을 바꿔가고 있는지 앞으로 주목할 만한 일이다. 물론 아직은 정부수준의 「판문점 대화」가 아니라 민간인에게 길을 열어주는 선에서 그치고 있다. 그러나 다급한 식량난을 풀기 위해서도 북측은 「김일성 조문(弔問) 시비」를 끝내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북측의 생각이 어떤 것이든 남북이 팽팽하게 맞서있는 판문점을 통과할 500마리의 소는 반세기만에 처음 보는 색다른 풍경을 연출할 것이다. 그 뒤를 이어 정주영씨도 북한방문에 나설 것이라고 한다.
애초에 정주영씨는 「금강산개발사업」을 협의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했다. 「화물차 공동생산추진」도 꼽았지만 금강산개발은 노태우정권시절인 89년 이래 그의 숙원사업이다. 그는 최근 회고록에서 『금강산개발사업은 죽기 전에 이루어야 할 숙원사업』이라고 못박았다.
금강산에 거는 그의 집념은 이해할만도 하다. 북측은 금강산지역에 카지노를 갖춘 종합레저타운을 만들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키울 작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이 노리는 돈주머니는 주로 일본인과 우리 관광객이다.
시인 김병연도 시를 감히 쓸 수 없었던 천하 명승지 금강산. 그것은 단순한 명승지가 아니라, 이 민족의 오랜 마음의 고향이요 「그리운 금강산」이다.
만일 금강산길이 뚫린다면 금강산을 구경하겠다는 사람들이 홍수처럼 밀려들 것은 확실하다. 그야말로 「삼척동자」도 금강산에 가겠다고 나설 것이다.
흥청망청 달러를 뿌리면서 세계를 누볐던 우리 관광객들은 방향을 바꿔서 금강산을 인산인해로 만들 것이다. 정주영씨가 집념을 갖는 것은 적어도 「수익」을 따진다면 당연한 일이다. 또 북으로서도 「관광특구」의 울타리를 쳐놓고 체제동요의 위험부담 없이 돈을 긁어 모으기만 하면 될 것이다.
남북교류는 통일을 준비하는 데에 첫째 목표가 있다. 그것은 남과 북이 사람과 사람의 만남·접촉·교류를 통해 민족적 동질성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금강산의 바위와 단풍을 보고 돈을 뿌리는 관광객은 다만 북측 체제유지비를 공급하는 「고객」일 뿐이다. 만일 교류의 방편으로 관광을 택한다면 금강산보다는 차라리 평양을 택하는 쪽이 보다 통일을 위해 긍정적일 것이다.
하필이면 정주영씨가 소떼를 보낸 뒤에 북측과 금강산개발사업에 최종합의를 본다면, 그것도 문제다. 아마도 남측 기업들은 앞으로 북측과의 유리한 협상을 위해 경제원칙에서 벗어나고, 정치논리에도 어긋나는 「원조경쟁」을 통한 「이권 따내기 경쟁」에 나설 것이다.
금강산 구경, 그것은 말만 들어도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그럴수록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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