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壽衣’ 준비하듯 담담한 生의 성찰/명리와 俗情에 묶여 표류하는 세상에/老 시인이 들려주는 ‘洗心의 십계명’지난 달 17일 후진차량에 치는 사고를 당해 입원치료중인 원로시인 구상(具常·79)씨가 아홉번째 시집 「인류의 盲點(맹점)에서」(문학사상사 발행)를 냈다. 구도자의 자세로 시의 길을 걸어온 노시인은 92년 이후 발표한 80여편을 묶은 이번 시집에서 초연한 자세로 삶을 되돌아 보고 있다. 한 시의 제목처럼 「臨終告白(임종고백)」같이 읽히는 작품들이다.
「흐려진 내 눈으로 보아도 내 마음은/아직도 名利(명리)에 연연할 뿐만 아니라/음란의 불씨도 어느 구석에 남아 있고/늙음과 병약과 無事(무사)를 핑계로 삼아/태만과 안일과 허위에 차 있다」(「近況(근황)」 에서). 그는 서재 이름을 「관수재(觀水齋)」라 붙였다. 『물(水)은 마음(心)과 통하는 것이니, 물을 바라보는 「관수」는 곧 나의 마음을 바라본다는 것』이라는 뜻에서다. 그는 거기서 바라본 자신의 마음이 여전히 「걸레처럼 더럽고 추레」하다면서 「물에 헹구고 씻고 빨아 보지만/절고 찌들은 땟국은 빠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끝내 나는 僧(승)도 俗(속)도 못 되고/엉거주춤 이 꼬라지란 말인가?」
그러나 그 진솔한 응시야말로 「俗情(속정)의 밧줄에 칭칭 감겨 있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씻어준다. 문학평론가 윤재근씨는 그래서 구시인의 최근 시들을 세심시(洗心詩)라고 불렀다.
시인이 바라보는 세상은 여전히 어둠에 덮여 있다. 표제작에서 그는 「온 세상이 문명의 利器(이기)로 차 있고/자유에 취한 사상들이 서로 다투어/매미와 개구리들처럼 요란을 떨지만/세계는 마치 나침반이 고장난 배처럼/중심도 방향도 잃고 흔들리고 있다」고 본다. 시인이 그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기독교도인 시인은 「저들에게 새 十誡命(십계명)은 무엇일까?」하고 스스로 묻는다.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먼저 질타하고, 세상을 구할 방도를 묻는 시인의 자세야말로 여일한 구도의 자세다. 그는 섣불리 해답을 던지지 않는다. 다만 빨랫감에 방망이를 두드리듯 우리 모두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일러줄뿐이다. 「오늘날 우리도 때마다/거울에다 얼굴도 마음도 비춰 보면서/스스로가 사납고도 고약한 짐승이 되지나 않았는지 살펴볼 일이다」. 그는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시집을 통해 「가장 사나운 짐승」인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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