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참상·분단의 아픔 생생히6월이면 으레 생각나는 것이 한국전쟁.
북쪽으로 달리던 철길이 끓어진 강원 철원군 월정리역, 한국전쟁 당시 최대의 격전지였던 백마고지, 전쟁중 폭격으로 역사는 사라졌지만 역사이정표와 철길이 남아 감회가 새로운 철원역등은 전쟁의 참상과 분단의 역사를 배우기에 좋은 장소.
철의 삼각 전적지 관리사무소 이동욱계장은 『이 유적지들을 안고 있는 철의 삼각지대는 평강군을 정점으로 철원과 김화를 이은 지역을 말한다. 이 지역은 북쪽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교통의 요충지로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과 북한군이 군수물자와 병력을 대거 투입, 교두보로 삼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당시 가장 격렬했던 전투가 벌어졌던 백마고지. 현재 북한땅에 있으며 철원군에는 전적비가 세워져있다. 철의 삼각지대가 훤히 보여 철원을 사수하고 주요 도로를 감시하기에 좋은 군사적 최적지였기에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피를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이곳을 놓고 아군과 적군간에 전투가 거듭돼 52년 10월6∼15일 10일동안 무려 24번이나 주인이 바뀌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한국군은 이 전투에서 중공군 1만3,000여명을 격멸하며 마지막 승리를 올렸으나 아군도 3,428명의 사상자를 내는등 큰 피해를 입었다. 효성산 언저리였던 이 곳은 그때 집중적인 포격을 받아 산모양이 바뀌었다고 한다. 전쟁으로 수목이 다쓰러져버린 처참한 형상이 마치 누워있는 백마처럼 보여 백마고지라 불리게 됐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백마고지 전적비에서 10분 거리인 철원역에는 역사는 파괴됐지만 역사이정표와 철길이 남아있다. 철원은 강원도에서 제일 먼저 열차가 다니던 곳. 1914년 경원선 철도가 놓이면서 철원은 경원 남북로와 서울금강산을 잇는 역으로 중요한 교차점이 됐다.
백마고지 전적비에서 돌아나오는 길에는 해방직후에 세워 전쟁때까지 사용됐다는 북한노동당사가 남아있다. 검게 그을린 3층건물 앞뒤에는 포탄과 총탄자국이 여전히 남아있다. 북한 노동당은 이 건물을 지을 때 성금으로 마을마다 쌀 200가마씩을 거뒀다는 기록이 안내판에 남아 있다.
백마고지에서 차로 20분거리에 있는 월정리역은 경원선이 잠시 쉬어가던 곳으로 현재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철책에 근접한 최북단 지점이다. 역의 바로 맞은 편에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간판과 함께 전쟁 당시 이 역에서 마지막 기적을 울렸던 객차의 잔해와 유엔군의 폭격으로 부숴진 인민군 화물열차가 앙상한 골격을 드러낸채 누워있다.
흥사단은 6일 서울지방철도청과 함께 매달 실시하는 「기차로 떠나는 어린이국토기행」으로 이 곳을 찾는다. (02) 7668936<김동선 기자>김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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