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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유권자/김경희 여론독자부 차장(여기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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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유권자/김경희 여론독자부 차장(여기자 칼럼)

입력
1998.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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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입구 게시판에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환하게 웃는 남자의 사진 10여장이 붙어있다.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의 얼굴이다. 과거에 비해 의상도 자유롭고 주책맞다 싶을 정도로 활짝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닥지닥지 붙은 사진이 마음을 착잡하게 한다.거리 곳곳에는 씁쓸한 풍경이 펼쳐지곤 한다. 어디 소풍이라도 나온듯 활기찬 선거운동원들의 얼굴과 풀기없이 축처진 행인들의 대조적인 모습이 그것이다. 연예인처럼 깨끗하게 차려 입고 뽀얗게 화장을 한 후보자와 그 일행은 뭐가 그리 신나고 즐거운지 시종 싱글대며 『즐거운 하루 되세요』라고 목청껏 외친다. 그러나 화답이 없다. 주민들의 표정은 그들처럼 밝지 않다. 요즘 삶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은 이가 누가 있겠는가.

행인들은 그들이 누군지 알고 싶지 않은듯 하다. 오히려 『당신들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오』하는 표정이다. 한마디 건네보거나 그들의 주장이 무엇인지 들어보려는 사람은 없다. 행인들의 눈빛은 『당신은 이번에 무엇이 필요해서, 어떤 이권에 개입하려고 출마하셨소』라고 질책하는듯 하다. 그들이 흔히 입에 담는 『지역 발전을 위해, 혹은 주민들의 복지를 위해』는 빛바랜 표어처럼 실없어 보인다.

그러나 후보자들 역시 처음 거리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에 비해 김이 빠진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계면쩍어하는 모습이 확연하다. 주민들의 눈에 비친 그들의 존재가 어떤 것인지 깨달아 가는 것 같다.

주민과 동떨어진 운동원들의 생경한 모습이 바로 오늘 한국정치의 현주소인 것 같아 쓸쓸하다. 이제 더이상은 속지 않겠다는 냉담, 이번에는 또 무엇으로 우리의 가슴을 찢을 것이냐는 불신.

선거일이 앞으로 사흘 남았다. 투표율이 민주주의를 위협할만큼 저조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오늘의 현실에서는 이상주의자만이 절망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모두가 이상주의자는 될 수 없겠지만 한번 더 희망을 품을 수 밖에 없다. 민주주의가 흔들려서는 더욱 곤란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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