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무역회관 전시장에서 열린 국제도서전시전 기간 중 「저자 사인회」라는 작은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국내 몇몇 문학상 수상자들이 나와 행사장을 찾은 독자들을 상대로 저자 사인회를 갖는다는 것이었다. 나가면 금방 곤혹스러워지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동안 이런저런 문학상을 받은 죄(?)도 있고 하니 차마 거절하기가 어려웠다.그런데 행사에 참가하기 전 그런 곤혹스러운 느낌을 가졌던 건 나뿐이 아닌 모양이었다. 다른 자리에서라면 서로 밝은 얼굴로 악수를 나누고 안부를 묻고 했을 다른 작가들도 왠지 마주쳐선 안될 자리에서 마주친 것처럼 서로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저마다 자기 이름과 자기의 책이 놓인 자리에 앉았다.
물론 알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국난이라는 이 IMF 상황이 독서시장엔 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책을 들고 묻는다. 이것 그냥 주는 것이냐고. 무료증정이 아니라 사인판매라고 말하자 오히려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뒤로 물러서는 사람들을 보는 작가들의 마음은 참으로 우울했다.
꼭 이런 사인회가 아니더라도 책이 나온 다음 얼굴을 아는 사람들로부터 가끔 그런 전화를 받는다. 신문을 보니 책이 나왔던데 그것 한 권 보내달라고. 그러면 나는 대답한다. 책을 보낼테니 너희 회사에서 새로 나온 자동차와 텔레비전을 보내달라고. 그러면 그들은 말한다. 책과 자동차나 텔레비전이 어떻게 같냐고.
책도 시장에 나오면 상품이다. 그런데 자동차 전시장이나 다른 가전제품 전시장에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왜 유독 책에 대해서만은 그것을 쉽게 공짜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어쩌면 그것이 문화에 대한 우리의 민도며 문학에 대한 우리들의 가장 솔직한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작가나 독자나 참으로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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