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이회성씨의 조국/이병일 수석논설위원(지평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이회성씨의 조국/이병일 수석논설위원(지평선)

입력
1998.05.31 00:00
0 0

『비행기 속에서 모국의 산맥을 내려다보고 끊어진 혈맥을 느꼈습니다』­72년 일본의 저명한 문학상인 아쿠타가와(芥川)상을 받은 재일동포작가 이회성(63·李恢成)씨가 그 해 6월 13일 한국을 처음 찾았을 때의 소감이다. 「다듬이질하는 여인」이란 작품으로 이 상을 받은 그는 당시 한국일보 초청으로 귀국해 10일동안 머무르다 돌아갔는데, 그의 귀국은 그가 무국적자를 자처하면서도 「조선」이란 국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특히 관심을 모았었다.■당시 그를 취재했던 기자로서 그가 행여 남북한 어느 한쪽에 치우친 인상을 줄까봐 말 하나하나까지 조심하던 기억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아예 한국이나 북한이란 단어는 입에 올리지 않았을 뿐아니라 양쪽을 비교하는 말은 꺼내지도 못하게 했다. 주로 민족이나 모국이란 단어로 남북한을 두루뭉실 표현했고, 『온돌방과 다다미를 배경으로 한 글이 같을 수 있느냐』며 민족의식만을 기회있을 때마다 강조했다.

■그는 사할린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란 재일동포로서는 한국말이 아주 유창했다. 『비록 일본땅에서 태어나 일본글로 작품을 쓰지만 내 작품은 한민족의 한사람으로서 조국의 마음을 그리고 있다』며 언젠가 기회가 있으면 우리말로 작품을 쓰고 싶다는 뜻을 비치기도 했다. 『민족의 입장에서 글을 써야 세계에 통한다』고 강조하던 그의 아쿠타가와상 수상은 당시 재일 한국작가들의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처럼 중립을 지키려 애썼고, 한때는 한국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기까지 했던 그가 「조선」국적을 버리고 「한국」국적을 갖기로 했다는 보도다. 아무리 2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지만 그 당시 조심스러웠던 모습을 떠올리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민주화된 조국에 봉사하고 싶다』는 것이 오랜 방황을 끝내는 이유라지만 조국을 두고도 마음대로 찾지 못하는 외로움도 컸으리라 생각된다. 대한민국 국민 이회성씨를 환영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