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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드라마,‘용’에서 ‘왕’으로(社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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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드라마,‘용’에서 ‘왕’으로(社說)

입력
1998.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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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TV의 대하사극 「용의 눈물」이 오늘(31일) 끝난다. 96년 11월 시작된 이 드라마는 여성시청자를 의식했던 종전의 멜로 사극들과는 달리 남성들에게도 드라마를 보는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조선 건국초의 긴박하고 역동적인 정세 속에 서둘러 왕권을 확립하려는 방원(태종)의 야심과 음모, 술책등을 박진감 있게 묘사한 이 드라마는 시청자로 하여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史實)을 재음미하는 재미를 주었다.「용의 눈물」로 재미를 본 KBS는 후속편으로 「왕과 비(妃)」를 준비하고 있으며, MBC에서는 이미 「대왕의 길」이 방영되고 있다. 용의 승천에 즈음하여 두 개의 「왕」드라마가 등장하는 것이다. 동양문화권에서 용은 예부터 왕이나 영웅 같은 위대한 존재를 비유해 왔다. 새 드라마 제목들을 「왕」으로 정한 배경에는 「용」이 확보해 놓은 인기를 잃지 않으려는 계산이 깔려 있음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잘 만들어진 드라마를 보는 것은 기분 좋고 유익한 일이다. 그러나 특히 역사를 재해석하는 사극에는 엄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전에 없이 「왕」 제목의 드라마 두 편을 보게 된 것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지금까지는 사극 제목이 주로 「연산군」 「장희빈」 「한명회」 「임꺽정」등 고유명사였다. 제목에는 내용을 상징하는 함축성과 함께 시대적·정치적 감각이 반영되어야 한다. 2000년대를 눈앞에 둔 지금 시청자를 왕정시대의 정서로 돌려놓으려는 것인지,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의 「왕」제목에서는 시대착오적인 어떤 의도를 짐작하게 된다.

「용의 눈물」도 그 점에서 거부감을 주었다. 이 드라마는 언론이 당시 여당이었던 신한국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나선 정치인들을 「8룡, 9룡」으로 부르는 분위기 속에 인기를 높여 갔다. 당시 대선을 1년 앞두고 드라마를 시작한 방송사와 여당 후보에게만 「용」대우를 한 언론들은 이미지조작, 상징조작의 의도가 있던 것은 아니었나를 뒤돌아 볼 필요가 있다.

시청자는 허구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도 사실처럼 받아들이게 마련이다.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한 사극은 특히 이 점에 유의해야 한다. 시청률을 항상 의식하고 있는 방송사로서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만드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시청률을 의식한 드라마가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부친(태조)과 싸우고 형(정종)을 몰아냈으며 두 아우(방석, 방번)를 죽음으로 몰고 간 태종의 폭력성과 패륜을 영웅화한 것이 교육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도 숙고해야 한다.

새로 시작하는 두 드라마는 보편적 기준에서 역사를 재해석하고 과거 인물들이 지녔던 이상과 내면적 진실을 보여 주며, 또한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여 시청자의 공감을 얻기 바란다. 「용」에서 「왕」으로 이어지는 드라마들이 시대착오적인 영웅심리를 자극할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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