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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제에서 환란까지:8(문민정부 5년: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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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제에서 환란까지:8(문민정부 5년:30)

입력
1998.05.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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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S심사 도덕성 추가” 재계 발칵/이석채 장관 잇단 기준변경에 ‘빅4’등 낙담/김현철 비자금 관리 ‘한솔 봐주기’ 소문 파다/청문심사로 LG 기사회생 ‘정치적 선정’ 의혹『국제전화 대신 개인휴대통신(PCS) 사업을 준비해야 합니다. 시간이 없으니 빨리 사업계획서를 다시 만드세요』

96년 1월초. 한솔그룹 조동만(趙東晩)부회장은 정용문(鄭溶文)한솔기술원장(현 한솔PCS사장)을 긴급호출, 이같이 지시했다. 부회장실을 나선 정원장은 곧바로 국제전화준비 태스크포스팀을 모아놓고 「PCS 사업계획서 작성 특명」을 내렸다.

한솔그룹의 신규통신사업 준비는 이렇게 급박하게 국제전화에서 PCS로 뒤바뀌었다. 한솔그룹 한 임원의 증언. 『당시는 허가되는 통신업이 여러가지여서 국제전화를 비롯한 모든 사업을 검토했습니다. 하지만 96년으로 해가 바뀌면서 급작스레 PCS를 준비하게 됐어요』 S회계법인 A씨. 『95년 12월 한솔의 국제전화사업권 참여를 위한 업무를 해왔는 데 1월초 「PCS로 바뀌었으니 회계 및 제반사항을 PCS에 맞춰야 한다」는 통고를 받았습니다』

국제전화사업을 따기 위해 열심히 준비해온 한솔그룹이 96년초 돌연 PCS로 타깃을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정보통신부는 96년 12월15일 재계 최대 이슈였던 통신사업권허가를 주내용으로 하는 「기간통신사업자 허가신청요령 공고」를 확정, 발표했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정책은 5일후 이석채(李錫采) 장관 취임후 수없이 고쳐졌다.

96년 1월30일. 서울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 한솔그룹 정원장과 소진화(蘇鎭和) 한솔텔레콤 사장이 기자회견을 자청, 정통부를 정면으로 비난하고 나섰다.『PCS사업권은 통신장비를 생산하는 그룹(4대 그룹)과 통신장비를 생산하지 않는 그룹 등 두 파트로 나눠 사업권을 하나씩 줘야합니다. 보다 많은 기업에 통신업 진출기회를 제공하고 해외시장에도 보다 많은 기업들이 나가기 위해 꼭 분리 허가해야 합니다』

이같은 발언은 2개월후 이장관의 입을 통해 똑같이 반복됐다. 이장관은 95년 12월20일 정통부 장관에 취임한지 3개월만에 신규통신사업허가와 관련해 중대한 정책변화를 시도했다.

96년 3월6일, 정통부 기자실. 이장관은 『PCS사업권을 장비제조업체와 비제조업체로 분리허가한다』며 허가신청요령을 수정, 발표했다. 현대 삼성 LG 대우 등 「빅 4」의 잔치로 굳어가던 당시 분위기는 일순 찬물을 끼얹은 듯 사그러들었다. 금호그룹 B씨의 증언. 『뭔가 이상했어요. 하루아침에 「빅 4」를 제외한 30대 그룹을 배려하는 정책이 나왔으니 다들 궁금했습니다』 궁금증은 97년 4월 한보청문회에서 드러났다. 조동만 한솔그룹 부회장이 경복고 후배인 김현철(金賢哲)씨의 비자금 70억원을 관리해 준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PCS사업에 뛰어들었다 고배를 마신 효성그룹 C씨의 회고. 『경복고 선배인 이석채씨가 정통부장관으로 발탁된 것과 사업자 허가가 끝나기 무섭게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간 사실을 놓고 재계에서는 이미 「한솔그룹」봐주기의 정해진 수순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한솔그룹의 PCS사업권 획득과 관련, 96년 3월28일 중대한 발표가 하나 나왔다. 그동안 금호 및 효성그룹 컨소시엄과 물밑협상을 진행하던 데이콤이 느닷없이 한솔그룹과 컨소시엄한다고 공식 발표한 것. 데이콤의 임원을 지낸 D씨의 설명. 『당시는 누구와 컨소시엄을 구성해야 유리한 지를 정확히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하지만 3월초 PCS사업준비단에서 한솔그룹과의 전략적 제휴만이 사업권을 딸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96년 3월6일 장관 기자회견에서는 특혜의혹을 낳게 한 또다른 내용이 함께 발표됐다. 『1차 심사항목에 대주주 도덕성과 참여업종수를 추가한다』 「빅 4」가 발칵 뒤집어졌다. 몸집이 큰 재벌일수록 도덕성에 흠집이 많고 참여업종수가 많은 것은 당연한 일. 이장관의 96년 4월19일 기자회견. 이장관은 『사업계획서는 계량 비계량 청문심사 등 3가지 방법으로 평가하고 심사항목별 가중치는 비공개로 한다』고 발표했다. 재벌기업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95년 12월15일 허가신청요령 공고때 없었던 청문심사와 심사항목별 가중치란 항목이 새로 추가됐기 때문이다.

특히 청문심사는 최근 감사원 감사에서 밝혀졌듯 당시에도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었다. 청문심사에 참여했던 E씨의 증언. 『무슨 영문인지 점수를 0점아니면 100점으로 통일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어요. 무조건 0점아니면 100점을 줘야한다고 해 그렇게 했지요. 뭔가 이상했습니다』 서류심사에서 8,275점을 얻어 8,258점에 그친 LG텔레콤을 17점의 근소한 차로 앞서가던 에버넷(삼성­현대 연합컨소시엄)이 PCS사업권 획득에 고배를 마시는 순간이었다.

청문심사에서 에버넷이 0점을 받은 반면 LG텔레콤은 200점 만점을 받아 LG텔레콤이 183점차로 1등을 했다. 1만점 만점에 200점에 불과한 청문심사에서 업체의 당락이 결정된 셈이었다.

삼성그룹 G임원의 회고. 『당시 청문심사가 예고없이 등장하고 가중치가 도입되면서 「정치적 심사」라는 판단을 했어요. 그룹내부에서도 그때부터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서류심사에 참여했던 모 대학 F교수의 증언. 『서류심사가 끝나고 대다수 위원들의 공통된 의견은 에버넷이 사업계획서를 잘 만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뒤에 LG텔레콤이 1등을 해 의아해 했지요』

현대그룹 H임원. 『가중치는 정부의 재량권을 뜻했습니다. 심사위원들을 통해 파악한 결과 심사항목마다 가중치가 녹여 계산되고 청문심사 채점이 「0, 100점」식임을 알고 정치적 심사임을 직감했습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A박사. 『당시 청문심사는 가중치를 통해서도 정부가 의도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에 대비한 것이란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에 앞서 에버넷이 출범한 것은 96년 3월15일. 그랜드 컨소시엄을 유도하는 정부정책에 따라 영원한 맞수 현대와 삼성이 손을 잡았다.

하지만 며칠 후인 3월21일. 이장관은 21세기 경영인클럽 조찬강연회에서 4대 제조업체(빅 4)의 대연합을 유도한 적이 없음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대우그룹 I씨의 회고. 『당시는 무조건 컨소시엄을 구성해야만 하는 분위기였어요. 하지만 장관발언으로 뭔가 다른 흐름이 있음을 직감했습니다』

이에 앞선 96년 2월22일. 동양그룹 안상수(安相洙) 기조실장은 LG그룹을 겨냥한 폭탄발언을 했다. 안씨의 당시 주장. 『LG그룹이 데이콤의 지분을 계열·관계사를 동원, 편법으로 법적 한도인 10%를 훨씬 초과 소유하고 있어 신규통신사업 참여 자격이 없다』 4월24일 남궁석(南宮晳)에버넷 사장(현 삼성SDS 사장)은 데이콤 지분에 대한 공청회 개최를 제의했다.

파문이 확산되자 정통부는 부랴부랴 96년 5월31일 구본무(具本茂)LG그룹 회장으로부터 데이콤 지분을 5%이하로 한다는 내용의 데이콤 포기각서를 제출받았다. 정통부는 그후 공정거래위원회의 LG그룹 데이콤 지분에 대한 유권해석 결과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당시 공정위는 『현재로서는 파악할 수 없다』는 내용의 회신을 보낸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LG텔레콤과 한솔PCS는 이렇듯 이석채장관의 철저한 보호와 몰아가기식 정책변경에 힙입어 그해 6월 재계 전체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PCS사업권을 거머쥐었다.<김광일 기자>

◎새옹지마 PCS사업권/‘황금알’ 초기 치열한 쟁탈전/출혈경쟁·특혜시비로 ‘오리알’/탈락업체들 오히려 안도의 한숨

96년 정부의 신규통신사업자 선정 최대 하이라이트는 새로운 휴대폰으로 일컬어지던 개인휴대통신(PCS)사업권.

PCS사업권은 당시 현대 삼성 LG 대우 등 「빅 4」는 물론 30대 그룹이 총출동, 치열한 쟁탈전을 전개했다. 정보통신업이 「황금알을 낳는 산업」으로 알려지면서 재벌들의 통신업 진출붐이 일어난 터라 당시 PCS사업권은 재계 최대 이권사업으로 떠올랐다. 때문에 96년 통신사업자 선정은 PCS사업권 이외에도 국제전화 등 10여개 사업권이 있었지만 PCS 잔치로 불릴만큼 PCS사업권의 향배가 재계는 물론 정치권 초미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세상만사 새옹지마. PCS사업권을 따낸 업체들은 요즘 죽을 맛이다.

휴대폰서비스업체가 5개사로 늘어 각 사별로 쏟아부은 1조원의 투자비 회수가 막막하게 됐다. 출혈경쟁으로 PCS사업은 이제 황금알은 커녕 향후 5년내에 손익분기점도 맞추기 어려운 「낙동강 오리알」신세로 전락했다.

게다가 당시 PCS사업권을 획득했던 LG그룹과 한솔그룹은 특혜시비에 휘말리면서 검찰수사를 받는 등 홍역을 치르고 있다.

극심한 자급압박에 일부 업체는 최근 우호적 기업 인수·합병(M&A)까지 추진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반면 당시 사업권 쟁탈전에서 고배를 마시고 땅을 쳤던 삼성 현대 대우 효성 금호 등 주요 그룹은 안도의 숨을 쉬고 있다.

삼성그룹의 경우 「탈락」으로 인해 오히려 휴대폰 5개사에 모두 통신장비와 단말기를 납품, 1년 넘게 라인을 풀가동하는 재미를 보고 있다. 환란과 함께 도마위에 오른 PCS 특혜시비가 어떻게 마무리될 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PCS사업자 선정추진 일정

▲95.12.15:정통부 기간통신사업자 허가신청요령 공고

▲95.12.29:정통부장관 경상현장관에서 이석채 재경원차관으로 교체

▲95.1.5:이장관 대통령 주재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출연금 동일시 추첨하기로 한 당초 2차 심사방법 철회 보고

▲96.3.6:정통부 허가신청요령수정 공고. PCS사업권을 장비제조업체와 비제조업체로 분리허가. 대주주 도덕성 및 참여업종수 심사항목 추가

▲96.3.21:이장관 21세기 경영인클럽 조찬강연회에서 공청회 개최 약속, 4대 제조업체의 대연합을 유도한 적 없다고 공식발표

▲96.4.15:참여기업 정부에 사업계획서 제출

▲96.4.19:사업자 선정 세부심사기준 발표. 청문심사 도입 발표

▲96.5.9:신청업체에 대한 자격심사결과 발표

▲96.5.23:1차 사업계획서 심사시작

▲96.6.3∼4:청문회 실시

▲96.6.10:신규통신사업자 선정결과 발표

▲96.8.16:선정통신사업자에 대한 정부의 사업허가서 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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