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비전없고 후보간 흠집내기만/‘앉느냐 서느냐’로 한심한 티격태격지방선거의 TV토론이 정도를 벗어나고 있다. 토론의 내용 질 준비과정 뒷처리등이 모두 낙제점수준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2년여의 짧은 연륜을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설득력이 부족하다. 『차제에 TV토론문화의 재정립을 위한 깊이있는 연구·검토가 이뤄져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국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TV토론의 문제점중 가장 심각한 부분은 토론의 역할과 의미가 후보자들에 의해 왜곡되고 있다는 점이다. 『유권자에게 후보간 비교검증기회를 제공한다는 당초의 취지는 퇴색되고 토론이 후보들에 의해 철저히 선거도구 또는 정치선전장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여야가 26일과 27일의 서울시장·경기지사후보 토론을 철저히 이전투구식 정쟁 장소로 만들어 버린게 대표적인 예이다. 특히 일부 후보들은 토론장에서 증거도 제시하지 않은채 정치공세를 서슴지 않아 토론회를 「공인된 유비(流蜚)통신망」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비난까지 일고 있다.
『토론회가 비전과 정책은 없고 인신공격과 흑색선전등 후보 상호간 흠집내기용 검증만 있다』는 비판도 강하다. 서울시장후보들간의 병역·특혜 공방, 부산시장후보들간의 공직비리·출신지 시비, 경기지사후보들간의 전력·사생활 논란등은 연일 되풀이되고 있는 「토론공해」들이다. 그나마 사회자 질문순서에서 정책문제가 다뤄지고 있지만 매 토론회마다 질문과 답변이 천편일률적으로 반복되고 있는데다 깊이도 없어 실효성이 의문시 된다.
주최자인 방송사측의 준비에 문제가 있다는 견해도 만만찮다. 진행방식상의 혼란, 「앉느냐 서느냐」파동, 수준낮은 질문내용, 사회자 교체 해프닝등은 모두 주최측이 준비과정서 명쾌히 풀었어야 할 사안들 이다.
이런 문제점들을 해소하기 위해 이재경(李載景·이대 신방과)교수는 『주최측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토론을 준비하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교수는 『후보들의 정략적 시도는 어찌보면 당연하다』며 『따라서 방송사는 준비과정서 모든 대비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비해 박명진(朴明珍·서울대 언론정보학과)교수는 『우리의 TV토론은 초기단계치고는 비교적 잘 되고 있다』고 전제, 『그러나 피상적이 아닌 심층 토론이 가능하도록 토론방식등을 연구할 필요는 있다』고 밝혔다.<신효섭 기자>신효섭>
◎국민회의 입장/“토론 합의내용 무시”
국민회의는 한나라당측이 TV토론을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주최사인 방송국측의 토론진행절차상의 미숙 등에 대해 강한 불만을 제기하고있다.
국민회의 김한길 TV방송대책단장은 28일 『후보간 합의가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며 『방송사가 한나라당의 정략적 주장에 휘둘려 토론회가 망가지고 있다』고 방송사의 토론 진행절차에 강한 불만을 쏟아냈다. 건전한 선거문화 정착의 장으로 선용돼야 할 TV토론을 방송사가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회의는 우선 양당이 동의한 TV토론회의 일자와 시간대가 한나라당의 정치공세로 변경되는 과정에서, 방송사로부터 일방적 통보만 받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27일 MBC의 경기지사후보 토론의 경우 한나라당이 사회자를 바꾸지 않으면 토론에 불참하겠다고 하자 MBC측이 사회자를 2번이나 변경하면서 협의 없이 사후 통보만 했다고 주장했다.
27일 토론회에서 앉아서 하느냐, 서서 하느냐 문제로 야기된 방송사고에 대해서도 국민회의는 1주일전부터 앉아서 하는 방식을 요구했으나 일방적 양보를 요구받았다고 주장했다.
국민회의측은 『키가 큰 손학규(孫鶴圭) 후보는 「서서하지 않으면 응할 수 없다」고 했다가 오늘 키가 작은 최병렬(崔秉烈) 후보는 「앉아서 해야 한다」고 하는 우스운 모습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국민회의는 선거전을 기본적으로 포지티브 캠페인으로 이끌어간다는 원칙 아래 TV토론 관련 문제에서도 야당 비방보다는 상대적으로 진행방식에 이의를 제기하고, 방송사의 공정한 제어능력 발휘를 요구하고 있다. 김한길단장은 『26일 KBS 서울시장 후보토론회에서 최후보가 잦은 의제외 발언과 시간초과등으로 규칙을 어겼는데도, 제어장치가 전혀 가동되지 않았다』고 불만을 표시했다.<김병찬 기자>김병찬>
◎한나라당 입장/“여당서 무관심 유도”
한나라당은 지방선거 후보간 TV토론이 여당을 위한 불공정한 「선거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고 줄곧 불만을 제기해왔다. 『TV토론이 활발하지도 않고, 국민들의 관심도 끌지 못하는 것은 TV토론을 의도적으로 무력화시키려는 여권의 전략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여권후보가 토론을 기피하고, 방송사도 TV토론의 일정과 시간대배정 및 토론방식 결정에 있어 편파성을 보이고 있다는게 당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나라당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것은 TV토론의 횟수 제한. 지난 대선에서 활발히 이뤄졌던 후보등록전 TV토론등이 여권 후보의 거부로 아예 한번도 이루어지지 못했고, 심지어 후보등록후에 계획됐던 일부 토론회도 같은 이유로 무산됐다는 것이다.
TV토론의 일정이 선거일 직전에 몰리고, 시간대도 시청률이 낮은 오전과 밤 늦게 잡힌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야당의 항의로 일부 토론의 일정과 시간대가 바뀌었지만, 시청률이 10%내외에 머무는등 TV토론회가 유권자의 눈과 귀를 잡지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지방선거와 대선의 TV토론이 프라임타임에 집중된 것에 비춰 명백히 형평성의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다.
이와함께 토론방식과 주제선정도 여당에 유리하게 결정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26일 서울시장후보 토론회에서 KBS측이 정책과 후보자질검증을 질문 항목 18대4, 시간 92분대 8분으로 일방적으로 결정함으로써 정책대결과 후보자의 자질 검증이 균형을 맞추지 못했다는게 대표적 항변이다.
장광근(張光根) 부대변인은 『대선등에서 TV토론의 가장 큰 덕을 입은 여권이 오히려 투표율을 낮추고, 무관심을 유도키 위해 이를 무력화하고 있다』며 『여권은 선거의 공정성을 위해 TV3사 합동토론회 추가개최등 야당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권혁범 기자>권혁범>
◎안방모독/버티기… 화풀이… 말싸움
「권투선수가 진행방식이 성에 차지 않는다고 링에 오르기를 거부하거나, 갑자기 시합을 외면한 채 주최측에 화풀이식 비난을 퍼붓는다면」. 다소 과장된 비유같지만 이같은 해프닝들이 지방선거 TV토론에서 실연(實演)되고 있다. 자질검증이나 정책대결과 같은 「미디어 선거」의 참의미는 실종돼 버렸다.
27일 MBC주최 경기지사후보 토론에서는 「앉아서 하느냐, 서서 하느냐」의 시시콜콜한 문제로 후보가 고의지각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초 앉아서 토론할 것을 주장하던 국민회의 임창렬(林昌烈) 후보가 『약속과 다르다』며 버티기를 하다 방송시작 8분후에 모습을 드러냈다. 임후보는 참석직후 『성의를 갖고 준비해 달라』며 MBC측에 불쾌감을 표시했다.
26일 KBS주최 서울시장후보 토론에서는 후보와 사회자가 설전을 벌이는 기현상이 빚어졌다. 토론진행방식에 강한 불만을 품고있던 한나라당 최병렬(崔秉烈) 후보가 『의제외의 질문을 삼가해 달라』 『답변시간이 지났다』고 제지하는 사회자에게 『가만히 계세요』라는등 수차례 이의를 제기한것. 두 토론에서는 이밖에도 상대방을 자극하는 감정싸움이 속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같은 「돈키호테식」토론때문에 사회를 맡은 MBC 엄기영(嚴基永) 보도제작국장과 정범구(鄭範九)씨는 진땀을 흘려야 했다.<김성호 기자>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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