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근래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부쩍 자주 듣는 말이다. 벌써 새 정부가 출범한지도 3개월이 지나고 있는데, 미국금융시장에서는 한국을 투자위험국이라고 판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통령은 개혁 을 외치고 있지만 각료나 참모들중 그에 걸맞게 믿음직하게 나라일을 추진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는 찾아보기 어렵다.3개월 동안 이 땅에 벌어진 일이라고는 그칠 줄 모르는 정치판의 싸움, 국무총리서리 위헌 시비, 의원 빼가기, 북풍 수사, 환란 수사, 재벌들과의 신경전, 금융기관들과의 승강이, 혼란스러운 정책 정도이다. 난리를 치듯 이런 일을 겪었어도 손익을 따져보면 별로 건진 것이 없는 것 같다. 부정부패는 여전하고 공직사회는 복지부동(伏地不動)이다.
언론에서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새 정부의 그간의 문제점은 정부조직개편의 실패와 국정 운영의 난조, 정책의 혼란, 인재난과 인사의 난맥, 지역주의의 심화, 개혁을 위한 추진력의 부족 등으로 정리된다. 지방자치선거가 끝나면 정부는 2차 정부개혁을 단행하고 내각과 대통령의 참모진용도 다시 정비하여 강력한 개혁을 추진할 것이라는 소문도 들린다. 부디 그래주기를 고대한다. 지금의 난국은 개혁으로서만 돌파할 수 있다. 흔히 개혁은 첫 6개월에 성패가 좌우된다고 하듯이 지금까지 한 것처럼 시간을 보내다가는 개혁은 정말 물 건너가고 만다. 반개혁세력들이 바라는 바다.
개혁은 혁명과 달리 정당성 이외에 합법성도 확보해야 한다. 합법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개혁을 추진하다가는 하는 일마다 좌초한다. 그래서 혁명보다 개혁이 더 어렵다. 지난 김영삼정부가 집권 초기의 준비부족으로 개혁에 성공하지 못한 것을 교훈으로 삼는다면 현 정부는 지금이라도 국정지표를 재확인하고 이를 실천할 프로그램과 방략(方略)을 마련해야 한다.
개혁 프로그램은 내용 이외에도 개혁의 단계와 속도, 수준의 안배, 부수되는 조치등이 세부적으로 결정되어 국민이 보기에 예측가능하고 기대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국민이 믿지 못할 정책은 국민을 더욱 불안하게 한다. 개혁 프로그램의 실천에는 반드시 방략이 따라야 한다. 방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개혁을 추진해나갈 인적 자원이다. 개혁의 중심세력을 만들고 핵심과 사령탑을 구축해야 하며 필요한 역할을 부여받은 인재들이 적소에 정확히 배치돼야 한다. 대통령제에서 개혁의 사령탑은 대통령일 수밖에 없다. 개혁의 중심세력은 행정각부, 국회 및 필요한 외곽과 주요 역할점에 골고루 배치돼야 한다. 개혁의 단계마다 상징인물도 적절히 배치해야 한다.
개혁의 실천에 있어 수단과 방법은 매우 중요하다. 수단의 선택과 일의 선후 설정은 개혁의 성패 요인이 되기도 한다. 부적합한 수단을 동원하면 그 의도는 좋다고 해도 설득력을 오히려 감소시킨다. 개혁에는 과정이 가지는 의미가 중요하므로 결과 위주로 일을 추진하다가는 반개혁세력에 반격의 빌미를 줄 뿐아니라 지지세력의 동의를 획득하는데도 실패할 수 있다. 정당성은 목적과 결과로 연결된 축을 가지지만 합법성은 방법과 절차가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다. 개혁에서 합법성이 가지는 의미를 진지하게 음미해보면 그간 노정된 방법과 순서상의 혼란과 실책도 능히 이해할 수 있다.
좌절감과 심리적 공황속에 사는 국민들이 진정 보고 싶은 것은, 대통령이 굳은 의지로 난국을 헤쳐나가는 지도력을 발휘하고 일당백의 능력을 가진 각료들이 소신을 가지고 일선 행정부처에서 밤낮을 모르고 진두지휘하는 모습이다. 이제는 이 나라에 중심이 있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