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산업의 구조조정이 초미의 관심으로 부각되고 있는 상황에서 또다시 관치금융의 재연 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소리가 높다. 정부는 IMF와 IBRD의 구조조정 압력에 부응하기 위해서 생각같아서는 팔을 걷어 붙이고 쾌도난마식으로 은행산업을 재단하고 싶겠으나 지금의 경제위기의 많은 원인이 그동안의 관치금융에서 연유되었음을 생각하면 이런 식으로 서둘러서도 안될 일이다. 구조조정의 가속화와 관치금융의 해소라는 언뜻보기에는 상충되는 정책목표를 추구해야하는 금융당국의 고충을 이해못 할 일도 아니다.그러나 필자는 관치금융의 해소가 바로 금융구조조정과 금융의 기업에 대한 감시기능 회복의 전제조건이라는 시각에서 금융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본다.
그동안 우리 금융산업은 정부의 산업정책을 지원해 오는 과정에서, 형식적인 민유화로 인한 주주권의 부재와 정부의 직접경영으로 인한 민영화의 미정착속에서 기업에 대한 대출심사등 자생적인 상업금융기능을 확충하지 못하였다. 또한 근자에는 금융자율화과정 마저도 통제되는 「관치자율화」 패러다임속에서 세계화하는 금융환경에 적용할 기회도 충분히 갖지 못하였다.
금융이 자원동원과 산업지원의 수단화하는 관치금융하에서는 불가피하게 예금과 투자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안전성」이 보장되는 반면 여신에 대해서는 전혀 「건전성」이 확보되지 못하는 전형적인 도덕적 해이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예금자와 투자자의 은행감시 기능이 작동하지 않고, 대출심사를 통한 은행의 기업감시기능이 작동하지 못하면, 은행산업은 더 이상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의 불침번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앞으로 금융산업의 구조조정은 아무리 시급하다하더라도 그 방식이 「관치금융」관행을 해소하고 상업금융기능을 살려내야 한다는 새로운 금융운영패러다임에 부응하지 않고서는 결코 금융산업의 낙후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관치금융의 해소라는 목표와 일관성을 갖는 금융구조조정 방안은 무엇인가? 우선 부실채권의 해소를 위해 관련은행과 기업의 주주들이 일차적인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하며 그다음 재정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부실채권은 정부의 관치금융에도 책임이 있기는 하지만 주주들의 금융경영이나 기업경영을 감시하는 기능미흡에도 큰 원인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기능을 살리기 위해서는 주주들이 일차적인 부실책임을 지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부실화된 금융기관과 부실기업에 대해서는 시장원리에 맞게 조속한 정리결정이 내려짐으로써 시간이 많지 않다는 분명한 신호를 시장에 보내야만 한다.
다음으로 은행법을 조속히 개정하여 이사회 구성과 운영을 완벽하게 주주들에게 돌려 주어 민영화가 실질적으로 정착되도록 하여야 한다. 현재와 같이 주주권을 제한하는 은행지배구조가 사실상 지금까지 은행의 자율·책임경영체제 구축을 저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M&A활성화를 포함한 은행산업의 대내외 개방을 조속히 완료해야 한다. 지금과 같이 제한적인 대외개방과 지나치게 과도한 국내자본의 은행산업 진입제한은 은행산업의 성장과 경쟁력제고에 역행하고 있다. 경쟁에서 보호되고 있는 은행산업이 정부가 열심히 하도록 명령한다고 해서 그리고 좋은 지배구조를 도입한다고 해서 경쟁력 향상에 적극 나서리라고 기대해서는 안된다.
은행산업의 구조조정이란 일차적으로는 잠식된 자본을 복원시키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서만 경쟁력 향상의 기초를 다질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필요하다면 은행주식 소유한도도 국적에 관계없이 선진국 수준으로 상향조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윤동기에 의한 새로운 자본의 진입과 확충이 없이 정부의 힘만으로 은행산업의 구조조정이 이루어질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금융개혁 조치는 과거 행정편의적 사전규제에 안주해온 금융당국의 건전감독기능 회복이다. 선진국에 못지 않는 건전감독규정에도 불구하고, 은행과 산업간의 소유분리가 대출집중문제를 해결해주리라 믿고 규정은 제대로 집행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불필요한 경영간여만 해온 것이 현재의 난국의 원인임을 직시하여야 한다. 따라서 동일인여신한도규제와 자본금 확충을 통한 자본충실도 제고 노력의 유도등 꼭 필요한 감독은 강화하되, 그 이외의 각종 진입규제나 경영규제는 과감히 자유화하여야 한다. 그대신 금융산업의 대내외 개방, 은행소유·지배구조의 개선 그리고 예금지급보장 관행의 개선등을 통해 은행간 경쟁을 촉진하고 주주와 예금자들의 금융경영감시 기능을 확충함으로써 「시장에 의한 은행규율체제」가 정착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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