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실의 묘약’ 바이애그라·대머리치료제 로게인…/엄청난 투자· 10여년의 시간·성공확률 5,000분의 1/그러나 일단 터지기만 하면 막대한 차익을 보장한다『현대판 「골드 러시」 신약을 잡아라』
최근 미국 화이자가 개발해낸 발기부전치료제 바이애그라의 파급효과는 일개 약품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전세계의 시선이 50㎎짜리 푸른 알약에 집중되고 있다. 유명 매스컴이 앞다투어 특집 기사를 쓰는가 하면 성기능장애로 고민해온 수억명이 가슴을 두근거리며 지갑을 꺼내보고 있다. 이 약은 첫해에 수억달러어치가 팔릴 것으로 기대된다.
최첨단 과학기술과 휴머니즘의 결정체, 신약. 수백조원대의 시장규모, 수십조원에 달하는 투자금액, 최첨단 과학 이론과 정밀한 기술의 복합체, 최고의 부가가치, 소중한 생명을 살리고 인류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으리라는 휴머니즘의 희망…. 신약 개발의 세계는 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드라마가 넘친다. 진기한 기록과 뒷얘기로 가득차 있다. 과학과 자본이 손잡고 현대판 「금맥」을 향해 달리는 현장이다.
신약이 개발되는 과정은 그야말로 요지경 속. 수백번의 물질 추출과 합성, 효능 탐색을 통해 약효를 가진 단 하나의 신물질이 발견된다. 모래 속에서 바늘을 찾아내는 듯한 어려운 탐색에 성공해도,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동물과 인체를 대상으로 한 테스트 과정에서 수많은 발견들이 탈락한다. 효능과 안전성을 인정받은 뒤 검증기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신물질을 발견하는 데 평균 2∼3년, 임상시험에 3∼6년, 승인 심사에 2∼3년이 걸린다. 길고 지루한 과정을 거쳐 신약이 탄생할 확률은 5,000분의 1에 불과하다.
오랜 개발기간과 낮은 성공률도 문제지만, 높은 투자비는 기업을 곤혹스럽게 한다. 성공 보장도 없이 수억달러를 십수년간 쏟아부어야 한다는 것은 경영진들에게는 도박과도 같다. 세계 10대 제약업체의 96년 평균 연구개발(R&D)비 지출은 14억 달러.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율은 평균 15.1%에 달한다.
생각지도 않던 곳에서 엉뚱한 결과가 튀어나오는 일도 잦다. 94년 대머리 치료약 열풍을 불러일으킨 미 P&U사의 「로게인」은 원래 혈압강하제로 개발됐다. 시판한 뒤 약을 복용한 환자들에게서 『머리털이 난다』는 보고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신물질이 두피 혈관의 활성화에 탁월한 효과를 보인 것이다. 대머리치료제로 변신한 로게인은 연 1억2,2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블록버스터 목록에 올라섰다. 협심증치료제로 개발됐다가 임상실험 과정에서 「침실의 묘약」으로 탈바꿈한 바이애그라도 이런 예다.
엄청난 투자, 희박한 성공률, 경영상의 위험부담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끊임없이 신약 개발에 뛰어드는 것은 왜일까. 한번 터지기만 하면 천문학적인 수치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 때문이다. 단 한 개의 신약이 크게 성공하면 십수년동안 R&D비용으로 쏟은 억대의 돈을 단 1년에 회수할 수 있을 정도다. 특허가 만료되기 전까지의 로열티까지 따지면 10여년장사를 한꺼번에 하는 셈이다. 영국 그락소웰컴을 순식간에 제약업계의 신데렐라로 만든 위궤양 치료제 「잔탁」은 81년 개발된 후 97년말까지 무려 47조원 어치가 팔려나갔다. 출시 직후 영국 기업순위 25위이던 그락소웰컴은 이제 영국 최고의 기업이자, 세계 제약업계 2위 자리에 올랐다.
신약을 둘러싼 정보전도 치열하다. 유수의 제약업체들은 신약개발 정보를 조직적으로 수집하는 기구를 따로 둘 정도다. 주식시장에서도 제약업체는 예의주시 대상이다. 신약 출시가 임박한 업체의 주식은 파동이 잦다. 허위정보가 나도는 일도 있다. 「잭팟」이 한번 터지면 주가는 5∼10배 껑충 뛴다. 바이애그라를 출시한 뒤 화이자 사의 주가는 주당 45달러에서 110달러대로 뛰어올랐다가 이 약의 복용으로 인한 사망자 발생이 보고되자 다시 주가가 떨어졌다. 최근 동물실험에서 생쥐의 악성종양을 완전히 제거해 획기적인 암 치료제 개발을 예고한 미 엔터메드사의 주가는 하루에 5배가 폭등했다.
신약 개발은 기술과 자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나라의 기술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하다. 87∼96년 10년동안 세계에서 발견된 신약은 478개. 매년 47.8개의 새로운 물질이 신약 명단에 오른 셈이다. 미국(연 12.2개) 일본(〃 13.4) 등 뛰어난 기술과 풍부한 자본을 가진 나라들이 단연 독점하고 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선진국들이 예외없이 좋은 성과를 올려 「1년 1∼2개 신약개발=G7 기술수준」이라는 등식도 성립한다.
여지껏 우리나라에서 탄생한 신약은 하나도 없었다. 국내 제약업체 600여개 중 R&D 여력이 있는 회사는 40여개에 불과한 실정이다. 매출대비 R&D 지출 비율은 4%에 불과하지만 경상수익율이 3∼5%에 그쳐 이 정도 연구비 지출에도 허덕이는 기업이 많다. 30%대의 높은 수익율, 수십조원대의 매출, 매출 대비 연구비비율 20% 이상을 자랑하는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의 경쟁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보인다. 인력과 과학 기술도 아직은 미약한 수준. 약을 개발해도 전세계를 대상으로 마케팅을 벌일 여력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신약 개발에 필수적인 임상실험을 실시할 시설도 없어 외국업체에 돈을 주고 위탁해야 하는 형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약의 제형을 바꾸는 기술, 약효를 증진시키는 기술 등을 수출한 예도 심심치 않게 쏟아졌다. 국산 신약의 탄생이 임박했다는 예측도 흘러나온다.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이강추회장은 『국내 신약 개발의 역사는 10여년에 불과하지만 지금까지 성과는 매우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유한양행 중앙연구소 이종욱소장은 『제약은 우리나라의 풍부한 전문인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저공해 고부가가치 산업』이라며 『인류의 생명과 복지를 소중히 생각하는 휴머니즘의 측면에서도 육성과 지원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김경화 기자>김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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