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답사·문헌수집 통해/‘백해무익 거짓말’ 아닌/그리스신화 원상회복 시도『「신화는 재미있는 거짓말」이라는 생각은 틀린 것이었습니다. 현장에서 본 신화는 허구가 아니었습니다. 진실이요 역사였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제우스, 아폴론, 헤르메스, 데메테르같은 올림포스의 신들은 진정한 신이요 숭배의 대상이었습니다. 우리가 신전이라고 부르는 고대유적들은 단순한 기념물이 아니고 경건한 신자들이 기도하고 예배보는 교회당이었습니다. 그때까지 나의 신화에 대한 이해가 잘못돼 있었음을 깨달았지요』
「그리스 신화의 세계」를 낸 한국외대 언어학과 유재원(48) 교수의 「깨달음」은 신화에 대한 몰이해를 역으로 대변한다. 그리스신화는 호메로스가 활동하던 기원전 8∼9세기부터 기원후 3∼4세기까지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여러 지방에 널리 퍼져 있던 온갖 불가사의한 설화와 전설을 총칭하는 말. 그러나 호메로스 이후 300∼400년이 지나 플라톤 시대에 이르면 신화는 「공화국」에서 내쫓기는 신세가 된다. 특히 기독교가 세력을 얻게 된 고대 말기에는 신화는 부도덕한 이야기로 가득찬 백해무익한 거짓말이라는 비난의 대상이 된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신화의 책 제목이 대부분 「그리스―로마 신화」로 돼 있다는 것은 매우 시사적입니다. 이런 책들은 기원전 5세기에 살던 고대 그리스인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2세기 이후 로마시대 관점에서 그리스신화를 기술하고 있어요. 믿음의 대상이기를 그친 그리스신화는 시적 영감을 주는 풍부한 소재로 인식되고 작가들은 신화를 수집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시작했지요. 각 신의 신격이나 종교적 의미는 철저하게 무시되고 소재 위주의 신화편집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바로 로마시대에 우리가 흔히 만나는 그리스신화의 기술형식이 확립된 것입니다』
유교수는 이 책에서 철저하게 그리스신화의 원형회복을 시도한다. 원형은 본문에서 작은 글씨로, 윤색이나 해석 및 필자의 설명은 큰 글씨로 돼 있다. 필자의 그리스신화에 대한 관심은 어린 시절 학원사에서 나온 「호머 이야기」를 읽으면서부터 시작됐다. 서울대 언어학과에서 인도유럽어를 전공한 후 그리스정부 장학생으로 아테네대에 유학하면서 그의 관심은 현장답사와 문헌수집으로 이어졌다.
이 책은 그의 입담만큼이나 능수능란한 필치로 그리스신화에 대한 풍부하고도 정확한 이해를 흥미롭게 전달한다. 서양인들의 소개로 전해진 그리스신화가 비로소 임자를 만난 듯하다. 월간 「현대문학」에 97년 1월부터 연재중인 것을 이번에 1권 「올림포스 신들」로 다듬어 냈고 곧 2권 「영웅 이야기」가 나온다. 4권으로 그리스신화를 정리할 계획이다. 현대문학. 1만5,000원.<이광일 기자>이광일>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