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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머리 남자/박찬욱 영화감독(1000자 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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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머리 남자/박찬욱 영화감독(1000자 춘추)

입력
1998.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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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만 해도 내 머리는 제3번 요추에 닿을 만큼 길었다. 사춘기 이래의 소원을 나이 서른이 넘어서야 이루었으니, 실로 15년만의 쾌거였다. 요컨대 내 머리 길이의 변천에는 한국 현대사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군인 아저씨들 치하, 시커먼 교복에 짧은 머리로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이 지겨운 소년병영을 탈출하자마자 머리부터 기르리란 열망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막상 대학을 가보니 80년대 초, 저 가장 가열찼던 학생운동의 시기에 화염병을 던지지는 못할 망정 머리를 치렁치렁 기르는 일 만큼은 차마 할 짓이 못되었다. 그후 군대 가느라 도로 삭발, 장가가느라 단발…. 사회기강이 해이해지기 시작한 노태우 정권 말기에 이르러서야 해묵은 소망은 다시 고개를 처들기 시작했고 문민시대에 접어들자 민주주의의 발전속도에 발맞춰 내 머리칼도 하염없이 자라갔던 것이다.친한 사람들은 만류했고 안친한 사람들은 손가락질했다. 그 네해, 확고한 신념이 있었으니 망정이지, 보통 배짱이 아니면 견디기 힘든 시련이었다. 공중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있노라면 남자들이 들어오다가 내 뒷모습을 보고 도로 나가버리기 일쑤였다. 반대로 무심코 내 뒷모습만 보고 쫓아오다가 남자화장실에 따라들어오는 여자들도 숱했다. 사람들은 날 어떤 영화를 만들 감독, 무슨 책을 낸 비평가라고 하지 않고, 『아, 그 머리 묶은 친구!』라고만 불렀고, 고정출연하던 어느 TV프로그램에선 두발불량을 이유로 잘린 적도 있다. 또 딸아이는 그림책에 머리 긴 여자만 나오면 반갑게 『아빠, 빠 빠!』를 외쳐대곤 했는데, 바로 여기가 중요한 대목이다. 내 딸은 내가 『여자라고 치마만 입고 남자라고 바지만 입는 건 아니냐. 어느 외국에선 남자도 치마 입어』하면, 『아빠가 남자면서 머리 길렀던 것처럼?』한다. 이제 이 아이는 가난뱅이는 게으름뱅이라거나 연하의 남자를 사랑해선 안된다라거나 흑인은 짐승이고 게이는 변태성욕자라는 따위의 이 세상 모든 편견을 거부할 준비를 갖춘 셈이다. 내 사랑하는 딸아, 네가 자라 머리를 빡빡 밀고 다닌대도 이 아빤 아무 말 않으마. 너희 세대에까지 획일주의의 유산을 물려주고 싶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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