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초로 예정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방미는 「준비된 성공」이 틀림없다. 미 국무부 로스 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의 표현대로 미국정부와 의회로부터 전폭적 환영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의 주장인 민주화와 경제성장 병행론이 바로 미국의 명제이고 김대통령의 신보수주의 세계화정책은 바로 미국이 세계에 전파코자 하는 메시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인도네시아사태는 마치 한국의 4·19를 연상시키고, 중국계 로니 정의 민주당 헌금스캔들과 군사기술 수출의혹이 클린턴의 6월 중국방문을 위협하는 현상은 22년전의 박동선(朴東宣)사건을 연상시킨다. 그만큼 한국이 앞선듯 보인다. 미국으로 보면 일본과의 관계는 악화하고 인도의 핵폭탄실험으로 클린턴의 통상외교 실패책임론이 비등한 상황이다. 이런 때 김대통령의 방미는 미국과 클린턴의 입장에서는 김대통령 개인의 민주화 성공, 한국개혁의 「예비적」 성공을 기초로 한국이 아시아에서 신자유주의 개혁의 모델로 등장하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심지어 지난달 중순 워싱턴에서 열렸던 5차 한미21세기위원회에서는 김대통령의 의회연설이 미의회가 거부하고 있는 국제통화기금(IMF) 추가 출자 180억달러의 의회통과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미국측 발언도 있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와 업계로부터는 실체적 도전을 받을 것이다. 이번 워싱턴회의에서 한국측이 미국정부 금융인들에게 확신을 심어주기 힘들었던 대목이 이른바 개혁의 「정치적 지속성(Sustainability)」이다. 공개적으로는 물론 사적 대화에서 가장 예민하고 깊이있게 미국측에서 묻는 질문은 바로 정치적 지속성이었다. 개혁의 일관성 지속성 자주성을 추진할 수 있는 정치적 뒷받침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이 정치적 지속성의 핵심이다. 그 답변의 최고 책임자는 바로 대통령이고 미국은 온갖 찬사와 박수 속에서도 그 정치적 지속성의 능력과 의지를 철저히 탐색할 것이다.
한국의 개혁이 아시아의 모델이 될 것이라는 미국내 높은 칭찬에도 불구하고 얼마전 발행됐던 외국환평형채권 발행금리가 필리핀보다도 높고, 워싱턴회의 미국측 주최자인 F 버그스텐 국제경제연구소(IIE) 소장이 금년도 한국경제성장률을 마이너스 5%로 보는 것등은 매우 주목할 대목이다. 아직도 한국의 개혁정책은 말은 모두 옳은데 행동이 안보인다든가, 기업·금융 구조개혁에서 정부의 의지와 책임이 애매하다든가, 시간의 우선순위가 안보인다든가 하는 것들은 드러난 불평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마이너스 5%성장의 정치적 사회적 부담을 소화할 정치적 지속성의 핵심을 의심하고 있는 것이 바깥 시각이다.
세계화의 주도국 또는 개방 개혁의 세계총독 쯤으로 일반이 알고 있는 미국이, 국내정치, 즉 유권자 표모으기 형식의 민주주의 때문에 국익과 국제협력의 공익을 자주 훼손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관계만 해도 대북한 중유지원문제, 한국에 대한 2선 지원금 사용문제등의 걸림돌은 모두 미의회 때문이다. 지금은 미국이 새로운 마샬플랜을 주도해야만 21세기의 인류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세기적 국면임에도 미국의 의회정치인과 월스트리트 금융인들의 작은 이익 때문에 미국은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할 것 같다. 진정한 미국의 세계화, 미국정치의 세계화가 요구된다.
한국 역시 새정권 들어 지난 3개월과 IMF구제금융 이후 6개월의 개혁, 그리고 6·4지방선거를 치르는 희화적 풍경들은 정치의 세계화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준다. 즉 김대통령이 그리도 선명히 내거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명제에서도 정치만은 빠져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개혁의 정치적 지속성에 대하여 자신있게 말할 수 없을 때 모든 외교적 찬사는 오직 아첨이고 허구일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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