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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 축성 100돌(社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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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 축성 100돌(社說)

입력
1998.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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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명동성당이 29일로 축성 100돌을 맞는다. 명동성당은 한국천주교의 상징과 구심점이라는 종교적 역할 뿐 아니라 70년대 이후 우리의 정치사회적 갈등을 끌어안는 민주화의 성지(聖地)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또한 우리 근대건축의 대표작으로서 이 성당이 지니는 건축사적 의미도 크다.명동성당은 축성 100주년 기념행사로 지난 1월부터 김수환 추기경의 특별기도회와 강연회등을 열고 있으며, 29일에는 100년전 이 성당을 건축하는데 공헌한 파리외방전교회 대표단등을 초청하여 기념미사를 올린다. 이와 함께 민주화운동을 벌이며 이 성당에서 시위나 농성을 했던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벌이고, 음악회와 심포지엄등을 연말까지 개최한다.

프랑스인 코스트신부의 설계·감독에 의해 고딕양식으로 축성된 이 종현(鐘峴)본당은 해방과 더불어 명동성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명동성당이 한국천주교의 중심이라는 종교적 상징 위에 민주화의 성지라는 역할을 더하게 된 데는 74년 지학순 원주주교의 양심선언이 큰 몫을 했다. 지주교는 반체제 시인 김지하씨에게 도피자금을 주었다는 이유로 당국에 연행되기 직전 명동성당에서 양심선언을 함으로써 부당한 국가권력에 저항하는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종교적 양심과 국민의 민주화 열망의 결합지가 된 명동성당은 역사의 고비마다 부도덕한 권력에 대항하는 구심점으로 모순과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정신력을 공급하는 공간이 되어 왔다. 유신정권에 대한 최초의 조직적 저항으로 평가되는 76년의 3·1명동성당사건과 87년 6월 항쟁의 근거지 역할 등 모든 중요한 민주화 투쟁의 중심에는 명동성당이 있었다. 민주화운동이 치열했던 87년에는 이곳에서 127차례, 연인원 6만1,000명이 집회를 가졌고 지난해만 해도 6개월이나 지속된 각종 농성이 62회나 있었다.

지난 1세기를 거쳐오는 동안 명동성당은 종교적 상징이면서 민주화의 성지라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명동성당은 지난해부터 사회가 극심한 경제난을 겪게 되자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달 실직자들을 위한 평화의 집을 마련했고, 또 「명동성당 축성 100주년 기념관」을 건립하여 음악회와 전시회등을 열 계획이다.

사회적 모순이나 갈등이 줄어들어 성당에서 시위나 집회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명동성당은 앞으로도 소외받거나 호소할 데가 없는 사람들이 찾아가 위로받는 곳으로 남기 바란다. 또한 종교적 귀의처로서 뿐 아니라 일반인들이 종교적 분위기와 더불어 문화적 휴식을 맛볼 수 있는 공간역할을 적극적으로 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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