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해 전에 제가 「링컨의 일생」이라는 책을 한권 펴냈더니 그 책이 뜻밖에도 많이 팔렸습니다. 그 사실을 아는 어떤 이가 저더러 『왜 서양의 위인만을 독자들에게 알리겠는가. 우리 역사에도 위인이 있는데…』라고 하여 생각 끝에 월남 이상재선생의 전기를 하나 쓰기로 결심한 적이 있었습니다.그리하여 월남에 관한 사료와 자료를 모으던 중, 선생의 손자 한분이 살아계신걸 알고 서울 홍제동 자택으로 찾아가 뵈었습니다. 한전 사장을 지내신 이홍직씨는 그때 이미 칠순의 노인이셨는데 월남께서 세상을 뜨실 때 연희전문의 학생이셨으므로 그 어른의 성품을 평가할 만하다고 믿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월남선생님의 가장 두드러진 일면을 말씀하신다면 그것을 무엇이라고 하시겠습니까』
그 질문을 받고 손자되시는 분이 대번 이렇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저의 할아버님은 매사에 매우 자연스러운 분이셨습니다』 그 한마디를 듣고 제가 무의식중에 무릎을 탁 치면서, 『그렇지요, 그렇지요』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위인이란 동서를 막론하고 「꾸밈이 없이 자연스러운 분」이라는 평범하고도 놀라운 사실을 재확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해 어떤 모임에서 의사 문병기 박사가 제게 이런 농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김교수, 어떤 여자가 얼굴은 뺀뺀하여 젊어 보이는데 목에 구멍이 하나 나 있으니 왜 그렇게 됐는지 알겠소』 그 질문에 대한 정답을 제가 알 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알 수 없지요』라고 말하며 웃었습니다.
문박사는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이런 풀이를 하였습니다. 그 여자가 주름이 잡히는 게 하도 싫어서 가죽을 당기는 수술을 여러번 하였답니다. 그래서 몸의 가죽을 당기다보니 마침내 배꼽이 그 여자의 목에까지 올라왔더라는 것입니다.
요새 얼굴을 예쁘게 보이도록 하려고 눈을 째고 코를 높이고 턱을 깎는 성형수술에 큰 돈을 쓰는 젊은 여자들이 많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돈도 있고 시간도 있어서 주름잡힌 늙은 얼굴을 젊게 만들려고 거액을 던지는 유한마담들도 적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젊게 보이려고 노력한다고 젊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독약은 먹고 남을 속일 수 있으나 나이는 먹고 남을 속이지 못한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남녀간에 세월 따라 나이를 먹고 그 나이를 따라 얼굴에 뚜렷이 드러나는 연륜인 주름살도 좋은 것인데 구태여 그 주름을 없이 하려고 애쓰는 것은 무리한 일입니다.
전직 대통령 한분은 어느 날 갑자기 백발이 흑발로 돌변하여 소년의 모습을 되찾았는데 보기가 민망하였습니다. 옛 시인이 이렇게 읊었습니다. <청산도 절로 녹수도 산수간에 나도 이 중에 난 몸이 늙기조차 하리> 이런 노래도 있습니다. <한손에 막대 잡고 또 한손에 가시를 쥐어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이것이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한손에> 청산도>
일전에 「국민과의 대화」를 위해 TV에 나오신 각하의 모습을 보고 저는 크게 실망을 했습니다. 각하의 얼굴에 골이 깊은 연륜과 경륜을 보고 국가의 장래에 대해 조금이라도 자신을 갖고 싶은 저희들에게 각하의 짙은 화장은 매우 실망스러웠습니다. 일본 가부키(歌舞伎) 배우처럼 보이도록 얼굴을 만져드린 그 분장사는 마땅히 해고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각하가 그런 화장을 원하셨을 리가 없습니다. 정성이 극진한 측근의 과잉충성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있는 그대로가 가장 아름답다고 저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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