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란토 국방유임 한때 진통/물밑에서 힘겨루기 양상/갈등 표면화 시간문제 분석「포스트 수하르토」 는 하비비 신임 대통령과 위란토 국방장관 겸 군총사령관의 불안한 「동거」로 출발했다.
그러나 최후의 승자는 둘일 수 없다.
바하루딘 유수프 하비비 대통령이 수하르토 사임후 정확히 26시간만인 22일 오전 11시(현지시간) 발표한 새 내각명단에서 가장 관심을 끈 대목은 위란토 장관의 유임이었다. 하비비 대통령의 취임선서 직후 신임 대통령에게 충성을 다짐한 위란토 장관에게 하비비는 유임통보로 화답해준 셈이 됐다.
그러나 당초 21일 저녁으로 예정됐던 새 내각 발표가 연기되면서 위란토 장관의 경질설이 흘러나왔다. 경질설의 배경은 수하르토의 사임과정에서 나타났던 하비비 당시 부통령과 위란토 장관의 불화 때문.
수하르토가 사임을 최종결심한 시각으로 알려진 21일 새벽 5시 이전 위란토는 사임문제와 관련, 수하르토와 2차례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20일 저녁 8시 수하르토와 처음 면담한 자리에서는 시위상황만 설명했을 뿐 구체적인 사임논의는 없었다고 소식통들은 전하고 있다. 이날 심야에 이뤄진 2번째 면담에서 비로소 사임문제가 거론됐던 셈이다.
반면 하비비는 수하르토가 『총선후 새 정·부통령 선출』이라는 국민담화를 발표한 19일 밤 수하르토와 면담, 「대통령과 똑같이 국민협의회에서 선출된 부통령」의 의사를 무시한 데 대해 상당한 불만을 표시했다는 후문이다. 하비비는 특히 수하르토가 사임결심을 하면서 가장 고민한 대목인 「후임자 선정문제」에 대해서도 헌법상의 승계권과 자신의 정국주도 능력을 강력히 주장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위란토는 하비비가 국민들로부터 신망을 받는 군출신이 아닌데다 돌출행동으로 국제통화기금(IMF)과 마찰을 빚는 등 국제적인 신인도가 낮다는 점을 들어 그의 대통령직 승계에 반대했다. 19일 수하르토의 담화는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하비비의 반격. 하비비는 하르모코 국회의장과 수하르토의 사위이자 위란토의 군부내 라이벌인 프라보워 전략예비군사령관(중장)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수하르토의 사임과 대권승계를 도출하는 데 성공했다고 관측통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와 관련, 월스트리트저널은 새 내각에서 하비비가 위란토를 경질하고 프라보워를 국방장관으로 임명한다면 하비비 체제가 오래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그러나 위란토는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인도네시아 국민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는데다 가장 강력한 집단인 군을 장악하고 있다. 반면 하비비는 반정부 시위에서 수하르토와 같이 퇴진요구를 받았던 입장이다.
이런 점에서 하비비와 위란토의 불안한 「동거」는 「포스트 수하르토」의 과도기를 건너기 위한 집단지도 체제의 시작으로 볼 수도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두 사람의 불화와 갈등은 표면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 시점에서 힘은 한 군데로 쏠릴 것이다. 그리고 위란토가 정권을 장악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자카르타=장인철 기자>자카르타=장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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