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브라이트 ‘끝내기’ 통첩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사임한 데는 미국의 영향력 행사가 결정적이었다. 20일 「수하르토 사임촉구」의 메시지를 담은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무장관의 공식발언이 나온 지 10시간만에 수하르토가 사임을 결심한 것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지난 32년간 정치적 후원자 역할을 해온 미국이 공개적으로 자신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나서자 수하르토로서도 무게를 더해가는 국내외의 압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게 미행정부 관계자들의 관측이다.
65년 발생한 공산쿠데타를 잔인하게 진압하면서 집권에 성공한 수하르토에게 미국은 그동안 숱한 인권시비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지지를 보내왔다. 지난해말 인도네시아가 금융위기에 빠졌을 때도 미국은 앞장서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을 움직여 430억 달러의 구제금융패키지를 마련했다.
그러나 지난 12일 클린턴 행정부의 메시지를 가진 조셉 프루어 미태평양사령관의 인도네시아 방문을 취소하면서부터 미국의 입장은 확연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점차 격렬해지는 인도네시아 국민의 반(反)수하르토 감정이 수위를 넘었다고 판단한 미국은 수하르토에게 「근본적인 정치개혁」을 촉구하고 나섰다. 미국 언론들도 이에 맞추어 14일부터 『미국정부도 수하르토를 포기했다』고 보도하기 시작, 미국 정부의 의사를 간접적으로 전했다.
이와 더불어 미국은 IMF및 IBRD의 차관제공 연기 등을 통해 수하르토에 대해 직접적인 압력을 행사했지만 수하르토는 조기총선이라는 「시간끌기」 해법으로 응답했다. 이에 미국은 20일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입을 통해 수하르토에게 「정치가로서의 역사적 행동」을 촉구, 결정타를 날렸다.
미국은 이런 과정에서 위란토 인도네시아 군총사령관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면서 미국의 의도를 수하르토에게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이전부터 대외원조기관인 미국제개발처(USAID)를 통해 반수하르토 세력을 지원해온 것으로 알려졌다.<워싱턴=신재민 특파원>워싱턴=신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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