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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안 정치/朴鉉兌 수원대 교수(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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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안 정치/朴鉉兌 수원대 교수(특별기고)

입력
1998.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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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는, 몇년전 독서계에서 화제가 됐던 김우중(金宇中) 대우그룹 회장의 저서 이름입니다. 나도 그 내용에 감동하여 두번 세번 빨간 줄을 쳐가며 읽었고 대학 강단에서도 학생들에게 여러번 소개했습니다.그 내용을 간추려 보면 바깥 세계는 한없이 넓은데 좁은 국내에서 아옹다옹 싸울 필요가 있느냐, 찾아보면 바깥에는 우리가 할 일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러한 상황에 대처하려면 첫째 나이 칠십이라도 컴퓨터를 배우고 자동차 운전을 해야 한다, 둘째 어떤 외국어든 한개에 능통하게 하라, 셋째 남한테 얻어맞지 않을 정도의 완력을 키우라 였습니다. 생각하면 구구절절이 옳은 말씀입니다.

그 책이 나온지 여러 해가 되었지만 우리는 과연 그런 생각을 지금 가지고 있는지 심히 걱정됩니다. 유럽연합(EU)회원국 15개국 중 11개국은 명년부터 「마르크」 「프랑」 「리라」등 각국의 독자적 통화를 버리고 「유러」라는 단일화폐를 쓸 작정입니다.

주권과 국경과 통화라는 잣대를 가지고 근대 독립주권국가체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18세기말의 그들 유럽 국가들이었습니다. 그후 이러한 독립주권국가체제를 유지, 확대하기 위하여 두 번의 큰 전쟁을 치렀습니다. 그들은 세번째의 세계대전을 초래하지 않기 위하여 모든 것 다 버리고 하나로 뭉친 것입니다.

우리의 형편은 어떻습니까. 국제통화기금(IMF)을 조기에 극복해야 한다면서,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면서,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무엇입니까. 여당이면 어떻고, 야당이면 어떻습니까. 여당이 잘되면 나라가 망합니까. 야당이 우세하면 나라가 잘 됩니까. 「고용안정」을 내걸고 주먹쥐고 삿대질하면 고용안정이 됩니까.

그전에는 나라의 문을 닫아걸고 우리의 경제운영 실상을 공개하지 않고도 나라를, 기업을 경영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지 않습니까. 미주알 고주알 까발려야 하고 뉴욕에 있는 다섯 개인지 여섯 개인지 하는, 국제적 공인 회계법인이 납득할 수 있는 경영을 해야 비로소 투자도 얻어오고 거래도 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닙니까. 이판에 독립주권국가가 어디 있고 국경이 어디 있습니까.

독립주권국가라는 개념에 대폭적인 수정이 가해져야 한다면 그 안에 있는 여당, 야당의 개념도 대폭 수정되어야 합니다. 누구나 월급이 깎이고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고 나라가, 기업이, 모두 거덜나고 있는 판에 여당 의원이 좀 늘어나면 어떻고 야당 의원이 좀 줄면 어떻다는 것입니까. 문제는 그것이 우리의 살길을 열어가는데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에 있는 것 아닙니까.

여당측의 대응에도 문제가 없지 않습니다. 국정의 책임을 졌으면 합리적이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방안을 국민앞에 제시하고 바로 실천할 일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신문에 유료광고를 내어 야당을 가리켜 「딴 나라당」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설사 지방선거가 닥쳤다 하더라도 지금은 정책을 실천할 때이지, 표를 얻기 위해 홍보부터 해야하는 시점이 아니지 않습니까. 야당도 야당입니다. 이를 맞받아쳐서 「궁민회의」라는 것은 또 무엇입니까. 지금, 말장난 할 때입니까.

옛날에는 독재니 뭐니 했어도 강력한 정부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일부 여론이 나쁘더라도 이를 감수해가며 정책을 수행하는 세력이 있었습니다. 지금 그런 여건이 있습니까. 그런 정부도 없으려니와 국민도 그런 정부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각자가 알아서 해야 할 시기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런 때와 같은 사고방식과 행위양식을 고수한다면 되는 일은 하나도 없고 경제는 갈데까지 가고, 머지않아 우리는 국내외로부터 외면당하고 말 것입니다. 갈데까지 가보자는 정치는 용인될 수 없을 것입니다.

역사를 보면 큰 전쟁전야에는 반드시 긴장의 해이가 있었습니다. 바로 내일 닥칠 재앙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안갖고 지도자나 국민이나 태평성대를 구가하며 사리사욕을 탐하고 환락에 젖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갈데까지 가서는 안됩니다. 미리미리, 다 같이 살길을 열어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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