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일본 도쿄대(東京大) 하스미 시게히코(蓮實重彦)총장이 졸업식사에서 도쿄대 출신 지성인들의 자기성찰을 촉구해 감명을 준 일이 있다. 그는 자기 대학 출신 대장성 관리들이 은행이나 증권사의 편의를 봐주고 호화접대를 받았던 일을 파렴치 행위로 단정하고, 『그들의 언동에 우리 대학의 독특한 풍토가 반영돼 있다면 예외적인 소수의 우행(愚行)일지라도 깊이 반성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그가 말하는 「파렴치 행위」란 사실 우리 기준으로 보면 크게 문제될 일이 아니다. 금융기관 감사일정 같은 행정정보를 미리 알려주고 요정에서 식사대접을 받거나 골프접대를 받는 정도는 우리나라에서 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언론이 「대장성 오직사건」을 문제삼자 하스미총장은 도쿄대 졸업생 전체를 향해 반성을 촉구했다.
그 외신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에는 명문대 출신 공직자들의 오직사건이 끊일 날이 없는데 왜 그런 자성론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었다. 그런데 엊그제 서울법대 한인섭(韓寅燮) 교수가 비슷한 주장을 한 사실이 보도돼 반가웠다. 한교수는 서울대 법학연구소의 근간 학술지 「법학」에 기고한 「법조비리 문제와 대안」이란 논문에서 의정부 이순호 변호사 사건으로 비롯된 법조비리의 실상과 원인 대책등을 설명하고, 『법조인의 60% 이상을 공급해 온 서울법대에 비리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법비리를 경험한 사람들이 이민가고 싶은 심정을 토로하는 것이 현실이라면 서울법대의 존재이유는 무엇이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주장은 논문 말미에 붙은 사족(蛇足) 한마디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의미가 퇴색될 수는 없다. 서민들이 「큰도둑 소굴」이라고 비아냥거릴 만큼 명문대 출신 공직자 사회를 비웃는 나라에서 해당 대학 교수의 자성록을 읽게 되니 청량제와 같은 느낌이다. 5공 직후 서울법대 출신이 법조계 잡지에 육법당(陸法黨)이란 말을 만들어 법대출신들의 도덕적 타락상을 고발한 글을 쓴적이 있다. 3공이래 많은 서울법대 출신들이 육사 출신 권력자들을 맹목적으로 추종했던 것을 비난한 글이었다. 이 글은 그리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잠시 화제가 됐다가 잊혀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번 한교수의 글은 달라야 한다. 나라를 움직이는 세력은 소수의 파워 엘리트들이다. 한교수의 글은 그 세력의 근간을 이루는 명문대 출신, 그 중에서도 핵심적인 파워를 형성하는 서울법대 출신 공직자들의 도덕적 성찰을 재촉하는 잠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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