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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法과 제도에 사랑나누기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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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法과 제도에 사랑나누기도 힘들다

입력
1998.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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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금 세제혜택·손비인정 한도 미미/TV모금프로는 法에 저촉 ‘눈치 방송’/일부 성금유용·탈세악용탓 규제엄격사업가 A씨는 뭔가 뜻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평생 모은 재산 60억원을 사회에 기부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A씨의 자식들은 아버지에게 섭섭해할 뿐 유언집행을 거부하고 아예 발길을 끊어버렸다. A씨의 부인은 혼자서라도 남편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더 큰 어려움에 부딪혔다. 남편 이름으로 장학재단을 설립하려고 보니 법 규정이 하도 까다로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까운 친지가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자선단체가 있었지만 여기에 기부할 경우 35%에 가까운 22억9,000만원의 증여및 상속세를 고스란히 물어야 했다. 거의 포기할 뻔 했던 A씨의 부인은 결국 전문가를 고용, 5년만에 어렵사리 재단을 만들었다.

A씨의 사례처럼 좋은 뜻을 지니고 있어도 막상 이를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기부행위에 관한 각종 제도와 법조항이 충분히 뒷받침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파급효과가 큰 기업 복지재단이나 방송사, 민간단체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법인세법상 재단이 내야하는 각종 기부금 중 정치헌금 국방성금 같은 법정기부금은 100% 면세를 받는 반면 지정기부금으로 분류된 복지사업 기부금에 대한 세제 혜택은 단 5%에 불과하다. 그나마 국제통화기금(IMF)사태 이후로는 기업의 기부금 한도를 기업 이윤의 7%에서 5%로 하향조정했다.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이혜경 교수는 『한편으로는 공익사업을 장려하면서도 정작 법제상으로는 실질적인 지원을 해주지 않아 아직도 우리 기업 복지재단은 걸음마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한다. 관련 법제도가 이런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은 자선 기부, 사회복지에 대한 인식의 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부금에 대한 세제혜택이 인색한 데에는 세수확대라는 현실적인 이유까지 가세하고 있다.

시청자 전화 한통당 1,000원의 후원금을 받는 KBS 1TV 「사랑의 리퀘스트」 등 각 방송의 자선 프로그램들 역시 상설모금을 금지하고 있는 기부금품모집규제법 때문에 행정자치부의 눈치를 보며 방송을 강행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도 연말연시 이웃돕기 성금은 사회복지사업기금법에 의해 민간단체들이 모금하되 관리 및 배분은 한푼도 출연하지 않은 정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루어졌다. 물론 얼마가, 어디에 쓰였느냐에 대한 발표는 일절 없었다. 때로는 복지관련 고위공직자의 금일봉으로 쓰이기도 했다. 민간 단체들로서는 기운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법과 제도의 배경에는 나름대로 이유도 있다. 한 복지재단의 관계자는 『사회사업가의 50%는 사기꾼으로 의심한다는 게 관련자들 사이의 공공연한 사실처럼 돼있다』고 탄식한다. 사회복지단체들이 성금을 유용하는 사례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기업이나 가진 자들이 재단을 탈세나 재산증여의 수단으로 악용한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소쩍새 마을 사건 등에서 드러났듯이 복지사업을 내세워 치부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자본금 5,000만원 이상의 상업법인은 사업내역 공개가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기본자산이 3억 이상인 전국의 사회복지법인 1,200여곳 중 쓰임새를 공개하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삼성복지재단의 황정은 과장은 『기부행위 주체들간의 심각한 상호불신이 우리나라 기부문화의 활성화를 가로막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말한다.

정부는 오는 7월2일부터 사회복지사업기금법을 대신해 공동기금모금법을 시행한다. 각계 인사들로 15인 내외의 공동모금회를 구성하고 모금 및 관리를 전적으로 민간에 위임한다. 사용내역 공개도 명문화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의식의 문제이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각자의 도덕적 자각이 깊이 이루어질 때 기부문화와 복지제도는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지적들이다.<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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