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亞민주화의 주역 피플파워 印尼도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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亞민주화의 주역 피플파워 印尼도 가능할까

입력
1998.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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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0년대 한국·比·泰 등 학생·시민주축 정권교체 성공/印尼선 野구심점 등 미약/‘시민혁명’여부 아직 미지수인도네시아 반정부 시위의 끝은 어디인가? 인도네시아가 과연 80∼90년대 대규모 민주화시위가 발생, 민주화의 대장정을 이룩한 한국 필리핀 태국과 같은 길을 갈 수 있을 지가 관심의 초점이다. 인도네시아 시위는 현재 이들 국가의 민주화 시위와 공통점과 차별성을 드러내면서 진행되고 있다.

86년 페르디난도 마르코스 장기집권을 무너뜨린 필리핀의 「피플 파워」는 대학생 시위가 계기였다. 이어 막강한 가톨릭 조직과 야당, 그리고 코라손 아키노 여사가 강력한 구심점이 돼 수백만명의 시위대를 조직적으로 선도했다. 또한 라모스 등 군지도부의 이탈과 미국 등 국제사회의 측면지원 등은 큰 희생없이 마르코스를 퇴진시키는 피플 파워를 가능케 했다.

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은 학생들의 민주화 시위에 이어 시민 노동자 지식인들의 참여가 줄을 이었으며 폭동사태 없이 시위지도부의 지시에 따라 진행됐다. 군부는 시위대에 무차별 사격을 가해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광주 민주화운동은 군부정권 등장을 막지 못한 미완의 시민혁명으로 끝났지만 본격적인 민주화 운동에 불을 지폈으며 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졌다.

40여년간의 군부 폭정을 끝내기 위해 89년 수십만여명의 야당인사 시민 학생들이 반정부 시위를 전개한 태국의 「방콕 5월 투쟁」은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군정종식이라는 귀중한 결실을 쟁취했다. 태국 군부가 실탄 사격등 시위대에 강경진압으로 일관하자 푸미폰 아둔야데트국왕이 나서 최고사령관 출신의 수친다 크라프라윤 총리를 퇴진시킨 다음 총선을 실시했다. 총선에서 야당인 민주당이 압승을 거둠으로써 5월 투쟁 승리의 대미를 장식했다.

이에 비해 인도네시아 반정부 시위는 군경의 강경진압과 대학생이 중심이 돼 지식인 시민 노동자 지지를 이끌어 낸 점은 이들 국가와 비슷하지만 규모와 강도면에서는 많은 차이가 있다. 시위를 선도할 강력한 조직과 야당, 반정부 지도자가 상대적으로 부재하다. 또한 시민들도 적극 동참 차원이 아니라 심정적 지지 차원에 머물러 있다. 민주화 시위와 함께 방화 약탈 등 폭동으로 한때 무정부 상태가 된 것도 민심의 수준 차원에서 다른 나라와 비교된다. 규모도 수백만명이 참여한 필리핀과 달리 수만명 수준이다.

무엇보다 권력유지의 핵심축인 군부이탈이 두드러지지 않고 국제사회의 가시적이며 구체적인 영향력도 없다. 이런 점들로 인해 인도네시아 반정부 시위가 곧바로 수하르토 정권 붕괴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배국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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