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지 「창작과 비평」이 여름호로 100호를 맞았다. 「창비」 100호 발행을 보는 우리의 감회는 유별나다. 리얼리즘 문학 중심의 계간지이자 지식인들이 참여하는 종합 지성지인 「창비」의 성격에 대한 공감여부를 떠나서, 문학과 사회에 대한 신념과 자세를 굽히지 않고 우리 현대사를 헤쳐 오는 일이 그만큼 벅찼기 때문이다. 3공 시대인 66년 1월 창간된 「창비」는 80년 5공 하에서 출판사 등록취소와 함께 폐간됐다가 88년 봄호부터 속간됐다. 25년이면 100호를 돌파했을 것을 32년이 걸린 것이다. 「창비」는 힘든 일을 해냈다.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28세의 문학평론가 백낙청(서울대 영문과교수)씨가 창간한 이 잡지는 70년 폐간된 월간 「사상계」의 빈 자리를 메웠고, 나아가 민족문학론, 민족경제론 등의 담론을 주도하며 새로운 계간지 문화를 일궜다. 사실주의와 민중성을 옹호해온 「창비」는 70년 창간된 「문학과 지성」(「문학과 사회」의 전신)과 함께 「창비계열」과 「문지계열」의 문인·논객을 배출하고, 우수한 문학작품의 생산을 주도하면서 지성계를 이끌었다.
또한 3선개헌과 유신, 긴급조치, 80년 서울의 봄, 87년 6월항쟁 등 현대사의 고비마다 강인하고 엄정한 철학과 시국관을 견지하며 위기를 돌파하는 저력을 보여 주었고, 그 때마다 수난과 고통을 겪기도 했다. 100호 기념호는 특집 「IMF시대 우리의 과제와 세기말의 문명전환」을 통해 한국사회의 장단기적 진로를 모색하고 있다.
우리 잡지들은 지금까지 조로(早老)와 단명이 숙명과도 같았다. 문학과 지성계의 튼튼한 하나의 축이자 험난한 시대에 바람막이 역할을 해온 「창비」가 100호를 넘겼다는 것은 든든한 일이다. IMF 사태라는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우리 사회는 「창비」가 지적한 것처럼 한반도의 분단체제가 흔들리는 위기이자 분단극복의 기회이기도 한 갈림길에 서 있다. 「창비」가 계속 바람직한 담론과 토론의 장이 되어 위기극복의 좌표를 제시해 주기를 기대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