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격변기속 한국 계간지시대 열어계간 「창작과 비평」이 올 여름호로 통권 100호가 됐다. 66년1월 창간된 후 32년만의 100호 발행이다. 「창비야말로 하나의 정부다」라고 누군가 말했듯, 창비는 한국의 문학·지성계에서 마치 정부 같은 권위를 지녀왔다. 「창비」의 100호 발행을 단지 일개 잡지의 연륜쌓기가 아니라 한국지성사의 한 마디맺음으로 생각해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권위는 창비가 창간 이후 줄곧 한국문화는 물론 정치·사회적 변화의 한가운데 있으려 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70년대 여러 차례의 정간, 80년 신군부에 의한 강제폐간, 88년 민주화 바람 속의 복간이라는 외형적 변화는 정치상황에 따른 창비의 곡절을 보여준다. 그 곡절을 백낙청 편집인은 100호 권두언에 「드디어 통권 100호를 내며」라는 다소 비장해보이는 제목을 붙임으로써 드러냈다. 문학계간지로 출발했으면서도 창비의 정치사회 비판을 담은 사회과학논문 집중게재는 현실비판에 목말라했던 독자의 갈증을 채워준 것이었다. 그 대표적 논객이 강만길 박현채 리영희 신용하씨등이다. 문학부문에서 백낙청씨가 펼친 민족문학론은 그대로 한국문학이론의 거대한 한 줄기가 됐다. 구중서 염무웅에서 최원식 현 주간으로 이어지는 평론가그룹, 시인 고은 신경림 김지하, 소설가 이문구 박완서 황석영씨등의 문인이 그 대표주자들이다.
창비는 복간후 한편에서는 시류를 좇아 너무 쉽게 변신한다는 비판과 함께, 한편에서는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자신이 세운 틀에 안주하고 있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아왔다. 최근 인터넷 홈페이지 개설등은 현실을 좇아가려는 움직임의 일단이다. 100호에 실린 촌평의 필자 한만수씨가 『창비가 원고청탁서에서 「재미있게」써 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도 뉴스감』이라고 한 것도 변화의 한 모습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100호 기념호를 중견·신예시인 20여명의 신작시와 중진에서 신진을 망라한 소설가 10명의 신작소설 특집으로 꾸민 것은 백낙청씨가 밝힌대로 『문학중심 계간지이면서도 종합 지성지로서의 임무도 동시에 수행하기 위해 소홀히 했던 면을 보충하기 위한 것』으로 읽힌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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