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경제위기는 적응위기이다. 생존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대비하지 못한데서 기인한 것이다. 경제가 그렇고, 정치가 그렇고 국민의식이 그러했다. 노동운동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이런 점에서 노동운동에도 시대적응의 발상전환이 있어야 할 것이다.이번에 도산한 어떤 기업이 자구차원에서 계열기업을 외국에 매각하려 했는데 노조에서 매각대금의 일부를 내놓으라고 요구하여 계약이 깨진 일이 있었다. 이치에 없는 요구였다. 지금과 같은 국가위기 상황에서 기업이 도산하더라도 고용을 지키라는 요구도 거세고 이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거리로 뛰쳐나가자는 소리도 높다. 모두 적응위기의 사례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동운동은 국민적 호응을 얻지 못할 것이며 노동자들의 복지향상에도 기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노동운동의 적응위기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첫째 인력과잉·저임금시대에서 인력부족·고임금시대로의 이행(移行)이다. 인력과잉시대에는 노사관계가 불평등하고 저노임이 지배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이 그들의 권익을 지켜주었다. 그러나 인력부족시대에는 기본적으로 경쟁적인 노동시장이 노동자들의 권익을 지켜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좋은 대우를 해주지 않고는 필요한 노동을 구할 수 없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지위가 향상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노사 쌍방 모두 집단적인 독과점행위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노동시장의 개방경쟁체제가 필요한 것이다.
둘째 보호에서 개방으로의 경제환경변화이다. 보호하에서는 경쟁력이 없어도 기업이 살아갈 수 있으며 따라서 일부 남는 인력을 끌어안고 있어도 기업생존에 지장이 없다. 그러나 개방체제하의 무한경쟁시대에는 그렇지 않다. 경쟁력이 없는 기업은 퇴출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인력의 정리가 불가피한 것이다.
셋째 기술발전과 산업구조변화에 따라 노동의 내용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은 이제 단순노동에서 지식노동으로, 그리고 집단노동에서 개별노동으로 바뀌고 있으며 날이 갈수록 노동이 다양화하여 재택근무제와 연봉제가 확대될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집단적 투쟁중심의 노동자 복지운동은 적응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끝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력부족시대의 경제성장은 노동의 유연성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원론적으로 말해서 경제성장은 고용량의 증가와 고용노동의 생산성 증가라는 두가지에서 나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경제성장이 그러했으며 그래서 고도성장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인력부족시대에는 고용량의 증가가 정지되기 때문에 경제성장은 생산성 증가에서만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노동의 생산성 증가는 인력이 남는 산업(저생산성 산업)에서 노동력을 방출하고 새로운 고생산성 산업에서 이것을 흡수하는 노동력이동이라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개관해 볼 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노동운동은 산업의 국제경쟁력을 유지보호한다는 큰 틀 속에서 전개돼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자유경쟁과 유연성을 보장해야만 하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의 번영이 이러한 노동시장의 개혁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노동개혁을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안전장치가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 이제부터 우리는 선진국처럼 실업의 생활화가 불가피하다. 이에 대한 실업대책의 제도화를 서둘러야 한다. 더불어 임금을 올리지 않고도 생활향상을 기할 수 있도록 맞벌이시대를 열어야 하며 이를 위한 사회대책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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