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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옵니다/김동길(東窓을 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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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옵니다/김동길(東窓을 열고)

입력
1998.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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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옵니다. 궂은 비가 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언젠가 멎으리라 믿습니다. 먹구름을 헤치고 햇빛은 강렬하게 젖은 땅을 비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속에 내리는 비는 쉽게 멎어주질 않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의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은 쉽사리 흩어질 것 같지가 않습니다.5월입니다. 5월도 중순에 접어들었습니다. 한국인에게 있어 5월은 매우 우울한 달이라고 해도 나무랄 사람이 없으리라 믿습니다. 61년 5월16일에는 군사쿠데타가 터졌습니다. 80년 5월18일에는 이른바 「광주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오늘은 공식적으로 「광주의거」니 「광주민주화운동」이니 하여 퍽 높이 평가되고 있지만 당시에는 「광주폭동」에 지나지 않았고, 그것이 조국의 민주화를 위한 항쟁이었다고 판단하고 그렇게 기사를 써서 실린 신문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5·16이 있고 그리고 37년의 긴 세월이 흘렀는데 어찌하여 아직 서울시민의 선잠을 깨우던 그 요란했던 총성이나 혁명군이 발표했던 「혁명공약」등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까. 많은 한국인의 기억에서 사라졌을지 모르나,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2·27선서」나 그 선서의 번복의 경위에 대해서도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10·26」사태가 김재규라는 한 고위공직자의 개인적 원한 때문에 벌어진 비극인지, 아니면 보다 큰 음모의 일환인지, 그것도 알고 싶습니다. 그 진상에 대한 보고서가 아직 나와있지 않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도대체 박정권 18년, 유신체제 7년은 한국역사 5,000년을 두고 어떤 평가를 받아야 마땅한 것입니까. 그때의 인물들이 아직 살아있기 때문에 어려운 작업이 되겠습니까. 대통령 각하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저는 국민에게 역사교육을 해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말씀드리는 것 뿐입니다. 역사에 있었던 일을 얼버무려 뭐가 뭔지 모르게 해놓고 넘어가는 민족이 문화민족이 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한강변의 기적」이 진실이었습니까. 그렇다면 지금쯤 박대통령의 동상이 한강변 한 두 곳에 마땅히 서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한강변의 기적이 오늘 우리가 겪는 IMF의 한파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도 밝혀지기를 바랍니다. 대학에서 강의하고 연구소에서 연구하는 학자들은 그런 사실들을 밝혀내고 평가하라고 존재하는 이들이 아니겠습니까.

영국시인 엘리엇(T.S.Eliot)은 『4월은 일년중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지만 한국인에게 있어서는 5월이 더 잔인한 달 같이 여겨질 것입니다. 아직도 5·17, 5·18이 되면 가슴이 공포와 분노로 떨립니다. 그 찬란했던 5월에, 국민의 가슴마다 피어나던 민주주의의 꽃망울을 무참하게 밟고 뭉개고 지나가던 그 군화 소리, 그 탱크 소리. 절망과 좌절의 그 한 때를 되새기면 마음속에 내리는 궂은 비 때문에 5월의 하늘은 우울하게만 보입니다.

대통령 각하, 저는 처음부터 5·18 희생자 유가족에 대한 거액의 보상금 지급을 반대해 왔습니다. 일단 그날이 「민주항쟁의 날」로 결론이 지어졌으면 그 희생자들은 사고로 죽은 것이 아니라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자들입니다. 국립묘지에 묻혀있는 전몰장병들이나 4·19 묘역에 누워있는 젊은 민주투사들의 유가족에게 거액의 보상금이 지급될 수도 없고 지급되어서도 안됩니다. 애국운동에 대한 보상금은 천부당 만부당한 일입니다. 안중근 의사나 윤봉길 의사의 유가족이 거액의 보상금을 받았습니까.

대통령 각하,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5월의 궂은 비가 내립니다. 울적한 심정에 이런 글을 드리게 되어 매우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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