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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개방 앞에서(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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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개방 앞에서(지평선)

입력
1998.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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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드­운명의 순간」이라는 영화가 오는 23일 일본에서 개봉된다. 태평양전쟁의 전범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를 영웅화한 이 영화는 일본 극우보수주의자들의 정서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재판정에 선 도조는 『태평양전쟁은 일본의 자위를 위한 전쟁이자, 아시아 해방을 위한 성전(聖戰)』이라고 당당히 강변한다.■중국 외교부는 지난 9일 『침략을 미화하고 A급 전범인 도조의 공적을 치하하는 이 일본영화에 충격과 분노를 느낀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이 담화는 중국중앙TV의 전국 톱뉴스로 전해졌다. 「프라이드…」를 비판하는 기사는 국내 신문들에도 보도됐지만, 우리 정부는 중국 외교부 처럼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무반응이었다.

■오히려 이와 대조되는 예가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박정수 외교통상장관이 13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일본 왕을 『천황(天皇)』이라고 호칭한 것이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일왕」이라고 호칭했고 일제 때 강압에 의해 「천황」으로 부르다가, 몇년 전 민족감정에 따라 다시 「일왕」으로 복귀했다. 외통부장관의 입장에서는 상대국이 부르는 호칭을 따르는 것이 관례라고 하겠지만,국민 감정으로는 「천황」에 대한 거부감이 아직 거센 것이 현실이다.

■이런 미묘한 분위기가 상존하는 가운데 최근 문화관광부는 이제까지 막아왔던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2002년 월드컵도 공동개최하게 된 양국은 대중문화의 장벽을 허무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된다는 것은 「프라이드…」같이 역사를 왜곡하는 영화가 우리 극장가에 등장한다는 이야기다. 물결은 개방 쪽으로 흐른다 해도 문화적 독소를 걸러낼 촘촘한 그물을 치는 것이 필요하다.<박래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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