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신문’ 국가배상 마땅/언론통폐합 위법성·배상 청구대상 인정하면서/구제권행사 不可상황 “81년 시효기산점” 잘못/유무형 피해 1,000억원… 납득할 수준 배상해야한국일보사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18주년과 50년만의 정권교체에 따른 진정한 국민의 정부 출범을 계기로 80년 자매지 서울경제신문의 강제폐간에 대한 진상규명과 피해배상이 이뤄져 언론정사(正史)에 올바른 기록을 남길 수 있기를 기대한다. 피해배상은 현행법 테두리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지만, 부득이한 경우 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서울경제신문은 1980년 11월12일 비상계엄하에서 강제폐간조치를 당한 뒤 같은 달 25일 지령 6390호를 마지막으로 제호를 내려야했다. 이 경위의 대강은 1988년 국회의 언론청문회에서 밝혀진 바 있으며 같은 해 8월1일 서울경제신문의 복간으로 폐간조치의 부당성이 입증됐다. 또한 김영삼(金泳三) 정부의 역사바로세우기 작업 일환으로 이루어진 검찰의 「12·12 군사쿠데타」 및 5·17비상계엄확대, 5·18광주민주화운동 수사과정에서도 신군부에 의해 자행된 언론통폐합조치의 위법성은 백일하에 드러났다.
그러나 그로 인한 피해의 실질적인 원상회복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국일보사는 국가 또는 정부 스스로의 광정(匡正)조치를 기다려 왔으나, 납득할 만한 아무런 조치도 없는 상태에서, 현행법상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자력구제의 최후 수단으로 국가배상신청 소송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여기에는 국가기관의 불법행위가 흘러간 역사의 그늘에 가려지고 잊혀지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는 뜻도 있었다.
그러나 법원은 서울경제신문 폐간조치가 국가배상청구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배상청구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피해구제에 소극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비상계엄해제일인 1981년 1월24일을 피해배상청구권 기산점으로 삼아 배상청구시효인 3년이 이미 경과했다는 논거다.
우리는 그같은 법원의 입장에 수긍할 수 없다는 것을 단호히 밝힌다. 쿠데타 세력이 서슬 퍼렇게 살아 국가권력을 휘두르고있던 상황에서 비록 비상계엄이 해제됐다 하더라도 사회적 약자인 한국일보사가 피해구제권리를 행사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사정을 감안해야하기 때문이다.
1980년 쿠데타세력에 의해 저질러진 언론통폐합 폭거는 한국일보사만이 아니라 우리 언론전체의 피해이며, 두번 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될 오욕(汚辱)의 역사다. 치욕스런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과거의 잘못에 대한 냉엄한 진상규명과 반성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며, 그에 따른 책임규명과 원상회복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우리는 1988년 언론청문회가 끝난 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언론통폐합이 잘못된 것이라면 최소한의 시정조치가 뒤따라야 했고, 납득할 만한 수준의 피해배상이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언론기업의 공익성과 사회적 사명에서만 보면 물질적 배상은 상징적 의미를 갖는데 불과할 지 모른다. 그러나 언론기업 역시 자본주의 경제의 틀속에서 영위되고 있는 사기업의 하나라는 점에서 원상회복에는 반드시 물질적 배상이 포함되어야 한다.
우리는 서울경제신문 강제폐간의 부당성과 피해배상의 불가피성을 객관적 사실과 논거를 들어 지적하고자 한다.
1980년 당시의 서울경제신문은 국내종합경제지의 효시로 1960년 8월 창간이래 독보적 경제정론지였다. 경제지 시장 점유율이 50%를 상회하고 있었고 제작진의 인적 구성이나 독자의 수준 및 발행부수, 그리고 경영상태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경제정책 입안자들이나 경제인, 기업인, 경영자, 경제학도들에게 서울경제신문이 교과서 역할을 하고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는 이러한 서울경제신문이 하루아침에 사라져야 했던 이유를 아직도 수긍하지 못하고 있다. 당시 국보위가 내세웠던 부실언론 정리나 신문·방송의 겸업금지 등 어떠한 기준에도 해당하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다. 더구나 서울경제신문 강제폐간은 형식상의 보상을 받거나 다른 매체에 흡수통합되는 것과 같은 1980년 언론통폐합의 일반적 유형과 달리, 아무런 보상대책도 없이 자체 소멸시킨 유일한 사례였다.
서울경제신문은 제호(題號)와 인력, 조직 등의 무형(無形)부분은 별도로 하더라도 그 자산가치가 당시 시가 250억원이상으로 평가됐다.
언론 통폐합의 결과 경제시장을 과점한 두개의 경제지가 5공하에서 16배이상의 경이적인 성장을 기록했다는 사실도 참고로 첨언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일보사는 1980년 당시 외형 경영규모가 전국 언론기업중 최대였으나 서울경제신문의 강제폐간으로 경영은 물론 심리적 위축까지 겪어야 했다.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던 자매지가 하루아침에 문을 닫아야만 하는 참담한 현실이 2,000여 한국일보사 사원에게 준 충격은 5공의 언론통제와 맞물려 한국일보사의 발전과 성장을 치명적으로 저해했다.
서울경제신문의 강제폐간에 따른 피해를 금액으로 산출해 배상신청의 근거를 밝히면 다음과 같다. 위에서 언급된 당시 영업권 평가 250억원외에도 한국일보사가 감내해야만 했던 경영상의 손실, 광고와 지대의 미회수분, 강제 폐간에 따른 응급비용, 재창간에 소요된 자금부담과 인력확보비용, 재창간 후 경영정상화까지의 적자부담 등 직접 손실만 해도 600억원선에 이른다.
20년 전통의 경제정론지 제호가 갖는 무형가치와 한국일보사 전체에 미친 위축감과 사기 저상(沮喪), 숙련된 우수인력의 포기에 따른 손실, 서울경제신문 자체의 광고·판매조직 붕괴 등은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지만 직접 손실과 거의 맞먹는 수준에 이른다. 이 모두를 합친 강제폐간의 피해는 1,000억원을 족히 상회한다는 것이 우리의 계산이다.
우리는 서울경제신문이 왜 이같은 비극을 맞게 되었는가를 다각도로 분석해 보았다.
우선 당시 언론통폐합의 주 목적이 정통성없는 세력이 권력을 찬탈하기 위한 것이었음은 공지의 사실이다. 서울경제신문이 경제정론지로서 경제부조리와 정경유착에 대해 바른 소리를 해왔음은 물론, 모기업인 한국일보사가 격동기 난세에 언론의 정도를 가고자 했다는 점이 당시 신군부와 그 주변세력에게는 눈엣가시였음에 틀림없다. 서울경제신문의 강제폐간은 한국일보사 전체에 대한 핍박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른바 혁명적 상황이라는 격동기를 틈타 물리적 강제력을 움켜쥔 신군부와 연계돼 자기이익을 챙기려고 한 일부세력의 이기주의가 가세했음을 잘 알고있다. 난세에 편승한 세력다툼이 경제정론지 서울경제신문의 강제폐간에 교묘히 작용했다는 여러가지 정황은 우리나라 언론 전체를 위해 불행하고 유감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앞서 말했듯이 오욕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치욕스런 선례가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충정에서 마지막으로 법에 호소하는 길을 택했다. 국가를 당사자로 한 법 절차의 진행과정을 통해, 언론통폐합의 진상과 그 책임소재가 더욱 분명하게 밝혀지는 것이 역사와 정의실현을 위한 우리의 바람이다. 우리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자 나선 것은 언론의 자유롭고 바른 앞길을 우리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자각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어떠한 고난이 있더라도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아 올바른 언론의 앞날을 열어 나가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한국일보·서울경제신문을 비롯한 한국일보 자매지의 모든 독자와 국민앞에 다시 한번 다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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