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강제폐간은 무효다/鄭晉錫·한국외국어대 교수(특별기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강제폐간은 무효다/鄭晉錫·한국외국어대 교수(특별기고)

입력
1998.05.18 00:00
0 0

◎“언론의 자유는 민주국가의 근간 강압에 의한 상처 치유위한 투쟁 아직 끝나지 않았다”이제 80년도의 언론통폐합이나 언론인 대량 해직같은 충격적인 사태도 까마득한 옛날 일처럼 기억의 먼 저편으로 희미하게 밀려나고 있다. 경제파탄으로 인한 대량 해고와 구조조정의 회오리바람이 몰아쳐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이나 일용직 피고용자를 가릴 것 없이 누구나 우울하고 불안한 나날이다. 장래에 대한 희망을 앗아가는 정치권의 비생산적인 싸움도 우리를 분통터지게 만들고 있다. 이같은 상황이니 지나간 날의 그 유쾌하지 못한 기억을 무엇때문에 새삼 떠올리겠는가.

그러나 80년도의 통폐합으로 입은 큰 상처를 치유하고 배상받기 위한 외로운 투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IMF 사태하의 오늘에도 엄연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경제신문이 국가를 상대로 벌이고 있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바로 그 사건이다. 자칫 먼 과거의 일로 치부되기 쉬운 언론통폐합과 관련된 재판이 아직도 진행중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몇 가지 의미를 찾아보아야 한다.

언론통폐합과 관련된 소송은 이전에도 20여건이 있었는데 공통되는 쟁점은 두가지로 요약된다. 통폐합을 주도했던 보안사의 강압행위 인정여부와 손해배상 청구권의 시효여부가 그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전에 먼저 생각할 일은 우리의 국가적인 이념이 무엇인가이다. 우리는 건국 이래 민주주의를 최고의 국가목표로 삼아왔다. 언론의 자유는 바로 민주국가의 근간이다. 그러므로 언론은 정치권력이나 물리적인 힘으로 없애거나 통합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헌법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가 건국 이래 일관되게 추구해온 국가적 가치관이다. 그런데 서울경제신문은 불법적인 권력의 강압에 의해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폐간됐다. 그러므로 통폐합으로 물질적인 손해를 입은 언론사와 언론인은 당연히 이를 배상받을 수 있어야 한다.

두번째 쟁점이면서 손해배상 여부를 판가름하는 핵심이 되는 법적인 문제로는 3년으로 한정돼 있는 배상청구의 시효가 소멸됐는가 하는 문제다. 그동안 통폐합으로 피해를 입은 여러 언론사에서 제기한 소송에 대해서 재판부에 따라 시효 기산점이 각기 달랐다. 81년 1월 비상계엄 해제의 시점으로 잡는 경우도 있었고 87년 6·29 선언, 88년 2월의 6공 출범, 88년 12월의 언론청문회 등으로 엇갈렸던 것이다.

재판부에 따라 이와 같이 각기 다른 판결이 나온 것은 모두 법조문의 해석과 시대상황을 보는 관점이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국가권력을 장악한 집단의 강요로 폐간이 강행됐으며 언론사가 소송을 제기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됐다는 인식하에서 이 사건을 바라본다면 서울경제신문의 피해배상은 그 시점을 미시적으로 판단해서는 안될 것이다.

다른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법조문으로만 본다면 5·16 이후 3·4공화국 시절에도 「등록」의 요건만 갖추면 누구나 신문을 발행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도 신문의 자유로운 발행은 허용되지 않았고 지난 65년부터 87년까지 사이에는 새로운 일간지가 하나도 발행되지 않았던 것은 무슨 이유인가. 법적 보장에 따른 권리를 행사하는 일이 어려웠던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87년의 6·29 선언 이후에야 새로운 신문이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다 아는 바와 같다.

따라서 서울경제신문을 비롯하여 언론통폐합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언론사들의 피해배상 시효의 기산점도 이같은 상황에 근거하여 해석함이 마땅할 것이다. 언론의 자유는 앞으로도 권력의 힘으로 침해할 수 없다는 역사적 교훈을 남겨야 한다. 우리나라 경제지의 선구자로서 오랜 연륜을 쌓았던 서울경제신문이 명예를 회복하는 동시에 피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판결이 있기를 기대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