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불신임땐 퇴진” 한발짝 후퇴불구 사태수습 ‘언론플레이’서 사임대비 모양갖추기說 분분 물러나도 후계지명 가능성
격렬한 반정부시위와 개혁요구, 유혈진압으로 연일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대통령이 13일 처음으로 사임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의 발언은 곧바로 외신을 타고 세계의 주요 뉴스로 타전됐다. 퇴진 요구를 받는 와중에서도 카이로의 개발도상15개국(G15)회담에 참석하러 대통령궁을 비운 그의 거취는 초미의 관심사가 돼 왔다.
그의 발언을 곧바로 「사임」으로 연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을 직접 겨냥한 반정부 시위를 무시하다시피해 온 그간의 자세를 볼 때 이같은 발언은 처음으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는 점에서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퇴진 시사는 대학생 시위대에 대한 군·경의 발포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흘린 의도적인 「카드」일 가능성이 높다. 언제든지 말을 뒤집을 수 있도록 「국민들이 자신들을 신임하지 않으면」이란 전제조건을 단 것이나 카이로의 교민들 앞에서 말한 것 등이 「급한 불」을 끄기위한 「계획된 발언」이란 느낌을 주고 있다.
또한 인니의 언론이 사실상 정부의 통제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언론 플레이」란 느낌도 지울 수 없다. 퇴진 시사 카드로 현 사태를 어느정도 안정시키며 시간을 번 후 사태의 추이에 따라 제2, 제3의 개혁조치를 내놓는다는 계산을 했을 수 있다.
한편으로는 진짜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사임할 수밖에 없는 경우를 대비한 「모양새 갖추기」일 수도 있다. 언제든지 물러날 수 있다는 명분 축적용으로서 「밀려나는」게 아니라 스스로 은퇴한다는 모양을 갖출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집권 32년간 수많은 고비를 넘겨온 노회한 정치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만약 퇴진한다 해도 그냥 물러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후계자 지명을 통한 수렴청정 시나리오의 가능성이다. 이는 『뒤에서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조언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힌 데서 엿볼 수 있다. 그럴 경우, 자신의 부관출신이며 국민들에게 신뢰를 받고 있는 위란토 국방장관겸 군총사령관이나 하비비 부통령 등을 내세워 「인도네시아판 6·29선언」을 발표케 한 뒤 「국가의 얼굴」로 남아 영향력을 계속 행사하는 고단수 계산을 했을 것이다.<이진희 기자>이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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