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협조융자채권은행단 ‘不可’ 결론 뒤집고 무대책 연명정책 펴 국제시장 실망/기업 ‘살생부’갑자기 “月內 도태기업선정” 충격조치 구조조정 흐름 왜곡… 금융·기업 혼란/고금리 하향조정건고금리의 구조조정역할 도외시 환율 불안정 상태서 억지인하 추진정부가 가뜩이나 힘든 기업·금융 구조조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정부가 시장에서 진행되는 구조조정 흐름을 왜곡하거나 다른 충격조치를 던져 시장기능을 크게 교란시키고 있다. 은행 종금 보험사들이 11일부터 갑자기 전격적인 기업대출금 회수에 나섰고 이 때문에 기업들은 벌집을 쑤신 듯 난리인 것도 정부의 미숙한 정책이 낳은 시장교란 때문이다.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이후 시장 원리를 중시한다고 수없이 말을 하면서도 몸은 말대로 움직이지 않아 「신속하고 적합한」 실행이 이어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최근 세번이나 「시장의 힘」을 결정적으로 거역했다.
채권은행단은 8일 모 건설사에 대한 3,500억원의 3차 협조융자 제공여부를 결정하는 회의에서 더 이상의 추가지원을 하지 못한다는 입장이었다.
시장은 이 기업이 더 이상 지탱하기 힘들다고 판정하는 분위기였다. 그것이 시장이 내린 결론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해외공사 등을 이유로 시장의 결론을 수용하지 못한 채 연명시키는 쪽으로 무게를 실었다. 무대책으로 연명시키는 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다. 국제금융 시장에서는 정부의 이같은 「무대책 지연정책」에 크게 실망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시장의 결론을 수용하되 문제해결 방식의 기본골격 정도는 제시했어야 했다. 이 회사의 최대주주가 주식포기각서를 쓴 만큼 채권은행이 이 회사의 주식을 일단 인수하는 것도 방법이었다.
채권은행은 이 기업을 살리고 자신들의 채권을 회수하기 위해서라도 적극 나서서 매립지의 용도전환을 정부에 요청할 수도 있다. 전환이익이 개인에게 돌아가지 않을 경우 매립지의 용도전환은 국가적 차원에서 재고돼야 한다고 지적되고 있다. 은행으로 하여금 자신과 기업이 사는 방법을 주도적으로 추진하게끔 확신을 주고 여지를 확인해주는 게 정부의 몫이다.
이 건설업체에 대해 무대책 연명을 사실상 지시한 정부는 이틀후인 10일엔 또 거꾸로 이달안으로 도태 대기업을 선정, 생사여부를 판가름하겠다고 밝혔다. 시장은 혼란의 도가니로 치달았다. 사실 시장은 급속하게 「살 기업」과 「죽을 기업」을 한창 분류해가고 있는 중이다. 동아건설도 그 한 예이다. 정부가 그 흐름은 정작 무시하면서 별도로 시한을 정해 전체적인 기업 살생부를 만들라니 괜히 상처를 크게 도지게 만든 것이다.
지금 시장에서 기업의 생사여부를 판정하며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힘은 다름아닌 「고금리」다. 정부가 아니라 고금리가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환율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억지로 고금리를 낮추려는 것은 잘못된 시장개입이다.
정부내에서는 대통령경제고문인 유종근(柳鍾根) 전북지사가 시장의 힘을 가장 확실히 인식하고 있다. 유지사는 12일 『고금리가 구조조정을 할 것』이라고 다시 확인했다. 정부출범 초기 정부정책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시장에 가서 물어보라』고 한 모 청와대수석의 발언은 기자가 아니라 바로 지금의 정부가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다.
하도 정부의 시장다루기가 어설프니까 일부에서는 차라리 정부가 1, 2개월간 영업정지 상태에 있으면 제대로 된 구조조정이 가능할 것이라는 지적마저 있다. 오죽 답답하면 이런 말까지 나올까. 반(反)시장적이어서는 곤란하다.
시장을 존중하는 시장다루기, 특정기업의 생사여부가 시장에서 결정날 때 종합적 결정을 하도록 돕고 부작용을 막기 위한 조치들을 최대한 가동하는 것이 정부의 정책적 기능이다.<홍선근 기자>홍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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