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하르토 대통령의 장기집권과 경제실패에 대한 항의로 시작된 인도네시아 유혈사태가 극적인 돌파구를 맞게 될 것 같다. 수하르토가 대통령직 하야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개발도상 15개국(G15)회의에 참석중인 수하르토는 14일 카이로에서 인도네시아 교민들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국민이 신임하지 않는다면 물러 날 용의가 있다』고 최근의 유혈사태 이후 처음으로 하야의사를 밝혔다.연설 내용의 문면으로 볼때 그가 결자해지의 자세를 취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은 가능하지만 아직 속단은 금물이다. 왜냐하면 그는 위기에 몰릴 때마다 전가의 보도인양 사임의사를 밝혔다가 거두어 들인 적이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국민이 신임하지 않는다면」이란 조건을 붙였다. 자신의 말을 뒤집을 여지를 남겨둔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사실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수하르토가 지난 3월 7번째로 임기5년의 대통령직을 시작할 때부터 민주화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간 수하르토 일족과 친인척들의 부(富)의 독점이 민생을 극도의 도탄상황에 몰아넣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정부패 규탄으로 시작된 시위는 잘사는 화상(華商)들을 약탈하는 무정부상태에 까지 달했고 급기야는 수하르토 퇴진을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과정에서 진압군은 시위대에게 무차별 발포를 해 다수의 사상자가 속출했다.
우리는 미테랑 전프랑스대통령이 중국 텐안먼(天安門)사태때 한 말을 기억하고 있다. 『자유의 이름으로 봉기한 젊은이들에게 발포를 해야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체제에는 내일이 없고, 또 폭력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이 말은 인도네시아 수하르토정권에도 예외일 수 없다.
76세의 노련한 정치인인 그가 앞으로 어떤 변신을 통해 사태를 진정시킬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분명한 한가지 사실은 인도네시아의 민심이 그로부터 떠났다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더이상의 유혈국면없이 사태가 진정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으면 하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에는 현재 약 1만5,000여명의 우리 교민이 있다. 뿐만아니라 우리의 고임금을 피해간 다수의 노동집약산업장이 현지에 즐비하다. 적게는 60억달러에서 많게는 100억달러로 추산되는 거액이 투자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교민이나 투자액을 생각해 볼때 사태가 원만히 수습되어야 하고, 또 환란을 겪고있는 우리입장에서는 인도네시아사태가 결코 이로울수가 없다. 하루빨리 유혈극이 종식되고 정상을 되찾기를 기원하는 것은 우리가 글로벌 타운(지구촌)의 일가족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하르토는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