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환자들의 눈물 속에 성라자로 마을 이경재(李庚宰) 신부의 장례미사가 13일 거행되었다. 「천형(天刑)」으로 낙인 찍혀 사회에서 버림받은 나환자들을 위해서 평생 헌신함으로써 진정한 박애의 정신을 실천했던 한 성직자가 뜻깊은 생을 마친 것이다. 그동안 경기 수원시 정자동 주교좌성당에 마련됐던 이신부의 빈소에는 종교인과 신자, 정치인, 일반인등 1만여명의 조문객이 찾아와 고인의 삶을 기렸다.신앙인 집안에서 태어난 이신부는 26세 때인 51년 신부서품을 받고 미국인 조지 캐롤안주교의 보좌신부를 자원하여 수원교구에서 나환자 돌보기를 시작했다. 이듬해 성라자로마을의 초대원장에 부임한 그는 버려진 나환자들에게 삶의 터전이자 재생의 근거지를 마련해 주는 일에 매진했다. 그는 나병은 불치의 병이 아니고 치료와 노력으로 퇴치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환자들을 격려했고, 일반인에게는 모두가 사랑을 나눠주는 가진 자가 되자고 역설하며 이해와 협력을 구했다.
한때 해외선교 생활을 한 적도 있지만 70년 귀국과 함께 다시 성라자로마을 원장을 자원하면서 나환자 치료와 나병퇴치 운동에 박차를 가했다. 「국제거지」라는 별명을 얻었을만큼 그는 1년 중 100일 가량은 외국에 가서 라자로마을 유지에 필요한 돈을 모아 왔고 나중에는 몽골과 베트남, 재중동포사회등의 나환자들까지 돕게 됐다.
그는 나환자 치료를 위해 신구교 합동모금 행사도 벌였고 나환자와 일반신자 들의 공동미사도 집전했다. 그는 『나환자들의 인간적 고뇌와 고통을 참는 모습, 그들의 가난함과 신앙생활의 자세를 보는 것이 큰 격려가 된다. 사랑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설교 보다 무언의 행동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한다』고 주장하곤 했다.
나환자 무료진료사업과 나병연구소 설립, 나환자 성형수술, 음성나환자 정착마을 지원등 나병과 관련되어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는 70여만명을 치료했고 그 중 1만여명에게 새 삶을 찾아주었다. 나병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바꿔 놓아 라자로돕기회 회원이 국내외에서 5만명에 이른다.
하와이군도 몰로카이 섬에서 나환자를 돌보다 나환자가 되어 숨진 다미안 신부를 존경했던 그는 『어려울 때는 그를 생각하며 힘을 달라고 기도한다』고 고백한 적도 있다. 그는 가장 고통받는 곳에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었다. IMF체제의 고통속에 그의 정신과 삶의 궤적을 돌아보면서 우리는 위안과 힘을 얻게 된다. 그가 실천으로 보여준 헌신적인 사랑은 어느 시대이든 우리 정신을 좀 더 높은 곳으로 이끄는 하나의 지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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