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이란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30여년에 걸쳐서 한국이 이룩한 민주화와 산업화는 전세계가 칭송하고 부러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우리는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것은 아니다. 정치적·경제적 발전이 매우 짧은 기간, 정확히 말해서 단 1세대만에 이루어졌을 뿐,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룩하는 동안에는 민주주의를 뒤로 미루었고 급속한 민주화가 진행되던 시절에는 경제를 소홀히 하였다.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은 그만큼 동시에 달성하기 힘든 이상이다.최근 우리는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 경제회생이 국가의 당면한 최대 과제가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때에 한국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되고 있는가? 물론 우선 현 정부가 헌정사상 최초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통하여 집권하였다는 사실은 한국민주주의의 성숙을 만방에 과시하는 계기를 마련하여 주었다. 그러나 오늘의 이 시점에서 우리의 민주주의는 과연 몇점이나 줄 수 있을까?
여기서 「민주주의」라고 할 때는 과거와 같이 헌정질서가 교란되는 상황에 비교하여 말하는 낮은 차원의 민주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절차적」인 차원에서 볼 때 한국민주주의는 아무런 하자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민주주의로의 전환」에 만족하지 않고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공고히 될수록 「내실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은 더욱 강렬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공고화에 있어서 우리는 철저하게 실패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실패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현재 목전에 놓인 6월 지방자치 선거이다. 이번 선거가 이미 금권선거로 타락하고 있다는 것은 여러번 보도된 바 있다. 후보공천에 있어서도 과거 그 어느때 보다도 무원칙하기에 유권자들의 선택 기준을 흐리게 하고 있다. 과연 이번 선거에서 한국의 유권자들이 지방색과 학연, 혈연을 뛰어넘는 「민주시민」다운 선택의 기준을 적용할 여지가 있는가? 정치인들과 정당들은 유권자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어떤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하다. 민주주의에서 강력한 지도력은 표의 우위에서 나온다. 그러하기에 필자는 이미 정계개편의 필요성을 주장한 바 있다(한국일보 98년 4월2일자 「한국논단」). 그러나 「내실있는」 민주주의가 어려운 이유는 표결결과에 못지 않게 과정의 정당성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득표를 위하여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민주주의는 겉껍데기 민주주의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지방자치선거는 심히 우려된다.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한국민주주의의 위상에 걸맞는 그런 선거가 될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내실없는 겉만 그럴싸한 한국민주주의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노출시키는 계기가 될 것인가? 정치인과 유권자 모두의 각성과 현명한 판단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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