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켜섬이 遺業계승·초월의 길 될것”/20년대 신문학운동 물줄기 돌려놓은 선생의 비평 높이평가/문학의 위대성은 시대를 넘어서 강렬한 희망을 주는것한국일보사가 팔봉(八峰) 김기진(金基鎭·1903∼1985) 선생의 문학적 유지를 기려 유족의 기금으로 마련한 「팔봉비평문학상」의 제9회 수상자로 최원식(崔元植·49·인하대 국문과 교수)씨가 선정됐다. 수상작은 평론집 「생산적 대화를 위하여」(창작과비평사 발행). 그러나 최씨는 수상을 사양했다. 최씨의 변(辯)과 심사평, 팔봉비평문학상 운영위원회의 실무간사인 문학평론가 홍정선(洪廷善)씨의 심사경위를 함께 싣는다.
제9회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심사숙고 끝에 수상을 부득이 사양하기로 결심하면서 제 마음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먼저 제 부실한 평론집 「생산적 대화를 위하여」를 평가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송구스럽습니다. 그 분들의 글을 읽고 자란 후배평론가로서 그 분들의 심사에 의해 수상자로 뽑혔다는 사실은 참으로 생광(生光)스런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비평의 발전을 위해 기금을 쾌척하여 이 상을 제정한 팔봉선생 유족들께 본의 아니게 누(累)를 끼친 점 죄송할 뿐입니다. 아울러 이 상을 공정하게 관리하여 가장 권위있는 비평문학상의 하나로 자리잡게 한 한국일보사에도 물의를 일으켜 유감입니다.
한국근대비평은 팔봉선생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닙니다. 3·1운동 직후 울분 속에 방황하던 우리 신문학(新文學)은 팔봉의 비평적 개입을 통해 문학의 사회성을 한층 자각하게 됩니다. 아다시피 팔봉은 「白潮(백조)」후반기 동인으로 참여, 「백조」낭만주의를 카프(KAPF)로 가는 중요한 징검다리로 변화시킴으로써 1920년대 신문학운동의 물줄기를 돌려놓았으니, 이는 대단한 일입니다. 팔봉비평은 그야말로 한 시대를 연 에포크 메이커(epochmaker)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정작 카프시대에는 팔봉비평이 비주류로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좌익 교조주의자들이 판을 잡음으로써 문학의 사회성을 기계적으로 강조하다 보니 문학이 실종위기에 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직면하여 팔봉은 소설건축론이라든가 대중화론을 통해 현실대중과 점점 유리되어 가는 카프의 방향을 교정하려고 고군분투하였습니다. 이 점에서 이 시절 팔봉비평이 비주류라면 그것은 불명예가 아니라 명예입니다.
그러나 1930년대에 들어서 상황은 더욱 악화합니다. 카프는 총붕괴하고 우리 문학은 일제말의 총동원체제에 강제징집되었던 것입니다. 이 시기의 친일문학은 가장 예민한 한국문학의 원죄근처(原罪近處)입니다. 저는 이 시기 친일문학이 본격적 탐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폭로하고 고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해하고 용서하기 위해서. 이 불행한 역사를 아프게 포용하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이 원죄로부터 해방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사를 침략과 저항, 억압과 항의로만 파악하는 단선성(單線性)은 극복돼야 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저항과 항의를 포기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역시 뛰어난 문학은 저항과 항의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함께 살아 있음의 눈부신 기쁨에 바탕하여 시대를 넘어 우리에게 강렬한 희망을 주는 것, 여기에 문학의 위대성이 숨쉴 것입니다. 팔봉비평문학상을 부득이 사양하는 약간은 비켜난 자리에 저를 두는 것이 한국근대비평의 개척자 팔봉선생의 유업(遺業)을 계승하면서 넘어서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저의 충정을 유족, 심사위원회, 그리고 한국일보사에서 널리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崔元植>崔元植>
◎심사경위/총 39권중 2차본심 4권 올라/열띤토론 이견없이 수상자결정
「팔봉비평문학상」의 나이도 어언 열살이 가까워 온다. 원래 평론분야의 상이 많지 않지만 평론분야에만 단독으로 수여하는 상으로는 유일한 상이라고 할 수 있는 팔봉비평문학상이 걸어온 지난 10년세월은 이같은 상황에 걸맞는 권위와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세월이었다고 우리는 자부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상의 운영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축적된, 심사의 공정성과 수상자들의 권위로 말미암은 결과였다. 김현, 김윤식, 김병익, 김우창, 김치수, 염무웅, 김주연, 구중서씨로 이어지는 역대 수상자들의 면모는 감히 한국비평계의 최고봉을 형성하고 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들의 면모에서 드러나듯 팔봉비평문학상은 비평적 경향이나 시각에 구애됨이 없이 작품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과정의 치밀성과 논리적 설득력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며, 그것이 이 상의 권위를 더해주고 있다.
제9회 팔봉비평문학상의 심사는 4월25일에 1차 본심을 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유종호, 김윤식, 김병익, 김주연 4명의 심사위원은 유종호위원장의 주재로 심사의 원칙을 먼저 정한 후 지난 1년동안에 간행된 총 39권의 평론집에 대한 토론에 들어갔다. 그 결과 2차 본심에서 논의할 4권의 평론집을 확정짓고 정밀한 독서를 위해 일단 산회했다. 5월1일에 열린 2차 본심에서 심사위원들은 우리 문단의 신망있는 비평가답게 날카로운 분석력과 솔직하고 논리적인 주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4권의 평론집에 대한 각자의 판단논리는 날카로우면서 이해심이 깊었고, 솔직하면서도 정연한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심사위원들이 지닌 그러한 분별력은 최원식씨를 제9회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자로 결정하는 데에 어떤 이의나 불만도 없게 만들었다.<홍정선 문학평론가>홍정선>
◎심사평/“확고한 신념에도 늘 열린모습 높이사”
네 사람은 별 진통 없이 최원식평론집 「생산적 대화를 위하여」를 제9회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하는 데 합의하였다. 그 이유는 대략 다음 몇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그의 비평이 지닌 건실성에 대한 존중이다. 이번 평론집은 첫 평론집 이후 15년만에 나온 것으로서, 전문평론가로서는 다소 과작에 속한다고 할 수 있고, 그런만큼 수록된 평론들의 시간적 편차가 크다. 그러나 단평류가 최대한 배제된 상태에서 그때그때의 문학현실에 진지한 문제의식으로 접근한 글들은, 그것이 지닌 현안으로서의 비중이 지나간 시점에서도 여전히 무게를 지닌 것으로 판단된다. 시사적인 자세 대신 본질적인 탐구의 덕분일 것이다.
둘째, 끊임없는 자기성찰의 모습은 중견비평가로서 한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문학의 근대성, 민족문학, 문학운동등에 대한 확고한 주장과 논리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은 섬세하게 열려 있다. 그리하여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성장하는 새로운 문학을 향하여 자기 자신을 갱신하고자 하는 노력이 은밀히 깔려 있음을 알려준다. 그것은 비평가를 포함한 우리 문학인 모두의 지향점과 일치한다.
셋째, 당연한 결과이겠으나 그의 관심은 꽤 광범위하다. 민족문학론자에게 흔히 연상되는 완강함 대신 유연함을 오히려 발견할 수 있다면, 지속적인 논지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 확실하다.
넷째, 무엇보다 중요한 점으로서 비판정신의 활동성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구체적 분석의 동반 없는 당위론의 공소한 강조도 문제지만, 해설류의 평론이 지닌 비판의식의 결여 역시 경계되어야 한다면, 최원식평론의 비판의식은 분명한 미덕이다.<심사위원=유종호 김윤식 김병익 김주연>심사위원=유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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