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구애 끝에 이뤄진 정명훈KBS교향악단의 밀월은 깨졌다. 단 한번 지휘대에서의 만남(2월 KBS교향악단 정기연주회)이 전부였다. 짧은 만남에 긴 상처만 간직하게 된 것이다.국민의 신망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정명훈. 국민들은 그가 KBS교향악단을 맡는다면 KBS교향악단은 분명 달라질 것이라 확신했다. 물론 평론가들은 그가 트레이너 지휘자가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한 건 아니었다. 정명훈 역시 환경음악회, 청소년 프로그램 등에 주력하면서 음악의 필요성을 사회화하겠다고 자주 말한 바 있다. 그것은 나름대로 이유있는 발언이었다. 왜냐하면 KBS교향악단의 체질 변화를 위해서는 선진국 오케스트라에서처럼 상임지휘자가 연간 10주만 체류해서는 큰 성과를 거둘 수 없음을 그 자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명훈의 애국심을 기대했고 그는 국제무대에서 자신의 위치를 생각했다. KBS교향악단에 혼신의 열정은 쏟는 것은 그로서는 대모험이었다. 그런데 우리 문화 현실과 오케스트라는 바로 그처럼 몸을 불사르는 헌신을 필요로 한다. 우리나라는 프랑스도, 이탈리아도 아니고 문화비가 국가예산의 1%도 못미치는 문화지원의 빈국이기 때문이다. 이를 알고 있는 정명훈은 트레이너를 맡을 부지휘자를 요구했으나 KBS는 돌출한 현 경제위기 상황에서 환율상승 등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 양측이 부닥치게 됐다. 「원칙 고수」와 「현실적 문제」가 갈등을 빚은 것이다. 원칙을 지켜야할 KBS의 노력과 신중을 기했어야 할 지휘자측의 판단이 균형감각을 잃으면서 선장은 혼자 피신하고 말았다. 단원들과 정 붙일 겨를도 없이 헤어지고 만 것이다.
이제 우리 문화계와 KBS교향악단이 더 이상 상처받기 전에 우리 힘으로 뭔가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국제적인 지휘자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던 것 같다.<문화실천연합 대표·음악평론가>문화실천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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