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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제가 직장문화 바꾼다/실적·이기주의에 분위기 썰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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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제가 직장문화 바꾼다/실적·이기주의에 분위기 썰렁

입력
1998.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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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사람 눈치보기 많아진 반면 직급 막론하고 자기계발 ‘붐’연봉제가 직장 문화를 바꾸고 있다. 능력과 업적에 따라 임금을 차등 지급하는 연봉제는 단순히 급여체계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연봉제 도입과 함께 연공서열, 상하위계, 인화 등이 중시돼 온 사무실의 기본구조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최근 연봉제를 시작한 기업의 직장인들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때문에 가뜩이나 어수선한 사무실 분위기가 더 썰렁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개인이 자신의 성과와 업적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데 혈안이 되다보니 팀워크나 조직 내 인화가 엉망이 되기 일쑤라는 것이다. 실적주의, 이기주의가 만발하면서 후배의 기획안을 가로채거나 동료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일도 빈번하다.

최근 연봉제가 도입된 한 대기업의 K과장(41). 그는 최근 기획안을 최초결재자인 부장에게 보고했다가 황당한 일을 당했다. 부장이 자신이 초안한 기획안을 결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다음날 초안 작성자를 자신으로 바꾸어 보고해 버린 것이다. 그는 『아이디어나 기획안을 훔치는 경우가 설마 나한테 일어날 줄은 몰랐다』며 불쾌해 했다.

전사원을 대상으로 연봉제를 실시중인 한 광고사 C대리(33)는 『팀장보다 팀원의 월급이 더 많다고 소문이 나 팀내 분위기가 나빠지는 경우가 있었다. 팀끼리 아이디어를 서로 교환하던 예전의 모습도 사라졌다』고 말했다.

부서원에 대한 평가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상사에게 「상명하복」하는 풍조도 더욱 퍼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연봉제를 실시중인 한 대기업 L대리(32)는 『연봉제 실시 이후 윗사람의 눈치를 보는 경우가 훨씬 많아졌다』며 『상사의 손에 자신의 평가가 달려 있다는 생각 때문에 반대 의견을 내기가 두렵다』고 말했다.

직급을 막론하고 불어온 자기계발 붐은 긍정적인 효과다. 비교적 일찍 연봉제를 시작한 중견그룹 정보통신 계열사 기획업무 담당 K계장(27·여). 인사고과에 반영되는 토익 시험 점수를 올리기 위해 매일 퇴근 후 영어학원으로 발을 옮긴다. 최근까지는 복잡한 컴퓨터 통계 프로그램 운영을 익히느라 땀을 흘렸다. 『가만히 있으면 뒤떨어진다는 생각에 불안하죠. 「컴맹」탈출을 위해 업무시간 이후까지 PC 개인 교습을 받는 부·차장도 있어요. IMF사태 이후「과외수업」에 쏟는 돈이 만만치 않은 부담이예요』 노력 덕분인지 입사 5년차인 그의 연봉은 2,200만원 선으로 입사 동기들보다 100만∼300만원 많다.

연봉제를 실시하면서 인사 업무의 중요성이 한층 더 강조되고 있다. 연차, 직급 등에 따라 급여를 일괄 적용하는 연공서열제와는 달리 개인에 대한 정교한 평가와 판단이 필요해 그만큼 업무가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전 사무직원을 대상으로 연봉제를 실시중인 한 대기업 인사담당 간부는 『연봉제는 업무평가 결과에 따라 사원 개인의 이해득실이 크게 달라진다』며 『연봉제가 일반화한 선진국에서는 인사가 최고급 업무에 속하고, 인사담당 직원도 최고 전문인력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김경화 기자>

◎30대 그룹 계열사 20%가 실시/삼성 전계열사로 확대/공직사회도 도입 ‘바람’

몇년전부터 우리 기업에 도입되기 시작한 연봉제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봇물터지듯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연봉제는 개인의 능력과 성과에 따라 임금에 차등을 두는 능력주의 급여체계. 그러나 최근 이 제도의 빠른 확산은 이런 본래 취지보다는 자금난을 덜어보려는 기업들의 자구책이라는 분석도 낳고 있다. 연봉제를 실시하면 보너스를 지급하는 달에 현금 수요가 몰리는 부담을 덜 수 있어 자금난을 덜 수 있다는 것. 또 일부 기업들은 연봉제를 실시하면서 상여금과 수당을 삭감, 인건비 규모를 대폭 줄이기도 한다.

지난달 한국경제신문이 30대 그룹 815개 계열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에 가까운 159개사가 연봉제를 실시하고 있다고 답했고, 이 중 올들어 연봉제를 도입한 기업은 삼성 계열사 등 55개사에 달했다. 지난해 노동부 조사 때만 해도 200여개 사업장 중 연봉제를 실시하는 기업이 3.6%에 지나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크게 늘었다.

연봉제 확산은 특히 대기업에서 활발하다. 제일기획 삼성SDS 등 일부 계열사 간부급에서 연봉제를 실시해오던 삼성그룹이 3월부터 전 계열사로 확대 실시중이고, LG그룹도 LG텔레콤 정유 등에서 실시하던 연봉제를 확대 실시키로 했다. 이미 2∼3년 전부터 연봉제를 부분 도입하기 시작한 두산 효성 롯데 등은 전 사원으로 확대 적용하려는 움직임이다. 최근에는 벤처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이 아닌 중소 제조업체 중에서도 연봉제를 실시하는 경우가 늘었다.

연봉제 바람은 공직사회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는 최근 공무원에게도 성과급제와 연봉제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시험적으로 올해부터 기획예산위원회와 행정자치부 사무관급 이상 공무원들은 월급을 능력에 따라 차등 지급받는다. 정부는 또 정부출연기관 등 공기업에도 곧 연봉제 등 능력주의 급여체계를 도입할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유규창 박사는 『최근 기업들이 너도나도 연봉제를 도입하는 데에는 유행처럼 경영 풍조를 따라가는 성향도 엿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연봉제 등 능력주의 급여체계가 구성원들에게 반드시 동기 부여 효과만을 주는 것은 아닌 만큼 회사의 경영 방침, 전략 목표, 조직 문화 등을 보다 신중히 검토한 뒤 실시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김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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