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하만으로는 경제회복 기대 힘들어 SOC 등 직접수요 창출을”외환 시장이 안정됨에 따라 금리가 점차 낮아지고 있다. 그동안의 높은 금리는 돈이 해외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안전판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그러나 이제는 늘어난 외환 보유고가 환율 방어의 수단이 됨에 따라 인위적으로 높은 금리를 유지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금리 인하는 무엇보다도 고금리 때문에 사경을 헤매던 기업들에게는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이 이제 자금 문제에만 매달리지 않고 영업이나 생산 쪽으로도 힘을 돌릴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것은 금리 인하가 경제 회복의 청신호가 될 수 있을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금리 인하만으로는 경제 회복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본다.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이자가 낮아지면 투자가 증대되어 경제가 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을 보면 외환 위기 때문에 놀란 소비자나 기업들이 씀씀이를 줄여 경제활동이 극도로 위축된 상태이다. 이런 비관적인 상황에서는 이자가 낮아지더라도 기업이 신규 투자를 할 의욕이 생길 수 없다. 다시 말하여 우리 경제는 1930년대의 대공황기에 케인즈가 말한 바 있는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므로 기업에 자금을 공급해주는 금융 기능만으로는 경제 회복이 힘들고 기업의 생산품에 대한 수요를 증대시키는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현 상황에서 수요를 증대 시키려면 수출을 늘리거나 정부가 직접 수요를 창출할 수 밖에 없다. 다행히 수출은 어느 정도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원자재 확보와 수출 금융 면에서 정부가 다른 나라와 통상 마찰을 빚지 않고도 취할 수 있는 정책의 여지가 많은데 이를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것 같지 않다.
문제는 수출만으로 우리 경제가 제때에 살아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직접 수요를 창출하는 길이 남아 있는데 효율적인 정부를 지향하는 마당에 인건비 등 소모성 경비를 늘릴 수는 없고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하는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 나라는 교통·통신기반이 부족하므로 이에 대한 투자는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키운다는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 다만 우리나라가 당분간 외채를 갚아 나가야 할 처지임을 감안하여 수입을 유발하는 프로젝트를 피하고 국내 생산을 극대화하는 프로젝트에 주로 투자해야 할 것이다.
이 경우 재원이 문제인데 금융 부문 회생에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상황에서 사회간접자본에의 투자가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한정된 재원을 금융부문 회생에 우선적으로 투여한다는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시야를 좀더 넓혀보면 금융 부문 회생을 위한 자금 투입과 경제 회복을 위한 사회간접자본에의 투자가 반드시 상충되는 것만은 아니다. 외국의 예를 보아도 금융 부문의 구조조정에는 몇 년이 걸리기 마련이며 이기간 동안 경제가 성장하지 않으면 금융 부문 구조조정 자체가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없다. 경제가 성장해야 금융 부문 회생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또한 부실 채권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재원 마련을 위해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정책은 무엇인가? 그것은 재정 적자를 한시적으로 늘리는 일이다. 정부가 그동안 균형재정을 이루어 왔음을 내세워 재정 적자를 늘리는데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은행 부문의 부채가 현실적으로 정부의 부채임을 인정한다면 그동안 균형 재정을 이루어 왔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금융 부문의 회생을 위해 재정 적자를 감수하는 것은 숨어 있는 적자를 드러내는 것 정도의 의미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부분을 빼고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를 위해 늘리는 적자의 폭에 대해서만 고민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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